[실행편]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선 안 되는 이유
딸아이와 한 달 살기 일주일차다
발리인들의 생활 속에 융화되는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방식을
하나의 잣대로 들이대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호불호’라는 자체가
결국 내가 스스로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인위적인 무언가임을
발리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깨닫게 되었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후
카페에 여유로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마치 유리창을 벽삼아
현지인과 외지인을 구분해 놓은 듯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
동네 미용실을 1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어느 한 발리 현지인이 보였다.
의도치 않게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봤다.
그녀는 힌두교다. (발리인 대다수가 그렇다)
하루에 3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신께 드리는 공물의 일종으로 ‘차낭’을
본인의 아기 다루듯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문 앞에 두는 모습을 봤다.
어느 행동하나 흐트러짐 없이,
대충스럽지 않아 보였다.
발리에 방문하면 길바닥을 시작으로
오토바이 번호판 등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잎으로 만든 접시 위에
각종 꽃과 쌀 등이 담겨있는 형태다.
여하튼, 설명은 접어두고.
정성스럽게 준비해 문 앞에 둔 차낭은
5분도 채 지나지도 않아
어느 한 외국인의 발에 밟혀 뭉개져 버렸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러려니’, 여유로운 미소만 지을 뿐이다.
내가 오히려 화가 났다.
아니, 외국인을 쫓아가고 싶었다.
오랜 과정을 거쳐 준비된 내 정성이
한 순간에, 그것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흐트러진다면 그 누가 화내지 않겠는가
하지만 발리인들에게는 일상이자
애초에 나 같은 마음을 가졌더라면
유리병을 특수제작해 고이 모셔두거나
아예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아니한다.
발리의 길거리는
행인과 오토바이, 차들에 밟힌 차낭들로
지저분(?)해져 있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거나
화내는 사람은 없다.
나와 그들은 다른 걸까?
이 것이야 말로 서로 다른 문화이자
그 속에서 습득된 마음가짐의 차이일까?
마음을 다시 잡아보니
그녀의 여유로운 미소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하는 행위이자 과정일 뿐,
그 결과 속에서 얻는 만족감이나
누군가에게 뽐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모르는 이의 발길에 묻힌 정성일지라도
본인의 마음속에서는 가치 있는 행위이자
무언 그 이상인 것이다.
‘효율’, ‘보여주기’, ‘비교’, ‘결과론적 사고’ 등에
묻혀 살아온, 때(?) 묻은 나 스스로를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그녀였다.
세상에 가치 없는 행위란 없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가치와 쓸모를 판단한다는 건
결국 나의 잣대가 개입된 것이다.
호불호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더 나아가
한 국가의 문화와 생활을
쉽게 판단하고
결론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려니, 다 이유가 있겠지’라는 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내일부터는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그들의 삶 속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