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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골마을에 울려 퍼진 'APT'

우리의 돌로미티2

by 장미화


사실 돌로미티라는 곳에 대해 잘 몰랐다. 저번 연재서 언급했듯 내게 그곳은 사시사철 눈 덮인 알프스가 있는 곳, ‘썰매 타러 가는 곳’이니까. 관광지 각이 덜 잡힌 스위스 같은 느낌이라고만 알았다. 그런데 돌로미티 숙소를 알아볼 때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여행 좀 한다는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돌로미티가 유명해진지 꽤 됐어.


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세체다 (돌로미티의 유명 트레킹 코스) 중심의 숙소를 잡긴 힘들 거라고, 아마 비싸기도 비쌀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애초에 세체다 반경 1시간 이내의 거리는 쳐다도 안 봤다. 그게 바로 로드트립의 최대 장점이니까! 내 차를 가지고 다니는 거라 중심가와 거리가 좀 떨어져도 부담이 없다.


관광지에서 뚝 떨어진 우리의 숙소가 있는 마을은 아름다웠다. 이탈리아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 작은 마을을 떠나며 사로잡힌 몽글한 감정 때문이었다.


처음 마을에 들어설 땐 너무 한적한 분위기가 낯설기까지 했다. 꼭대기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두 세명 남짓.


숙소에 도착해서도 너무 고요해서 '여기가 맞나?' 우리는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또 고요하게 나온 아저씨가 그 흔한 '안녕'이란 말도 없이 계단을 가리켰다. 나는 말없고 투박한 시골아저씨가 데리고 올라간 어두침침한 계단이 왠지 오싹하게 느껴졌다. 우리를 숙소로 안내해 주고도 아저씨는 문 앞에 서서 뭐라 중얼거리며 머뭇거렸다. 내가 슬쩍 눈치를 주자 남편은 아저씨를 데리고 나갔다. 잠시 후 들어온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뭔가 분위기가 오싹하다.

너무 고요해서 그런가?"


남편은 아저씨가 영어가 서툴러서 그렇지 참 좋은 분 같다고 한다. 그제야 경직됐던 마음이 풀리면서 커튼을 열어젖혔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이 풍경을 내일 아침에도 볼 수 있단 말이지?


순식간에 마음 공간이 넓어지며 모든 게 좋아졌다. 이 작은 마을과 고즈넉한 공기, 그리고 이런 완벽한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아저씨까지!


다음 날 아침 세체다로 출발하는 길에 만난 아저씨에게 "우리 세체다에 가." 하니까 "그래(Yes.)" 한다. 내가 "그곳은 정말 아름답지?" 하니까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띠며 "응(Yeah.)" 한다.




세체다에서 신나게 썰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숙소가 있는 마을로 진입하자 뜬금없이 시끌시끌하다. 순간 길을 잘못 들었나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우리가 알던 그 산골마을이 아니다. 클럽에 들어온 듯 음악이 쾅쾅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다 숨어있었나 싶게 꽤 많은 인파가 길거리에 나와있다. 화려하게 빛나는 덤프트럭들도 연달아 지나갔다. 트렁크를 조명으로 무대처럼 꾸며놓고 올라탄 청년들의 손엔 술병이 흔들리고 있었다.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한 젊은이들이 방방대며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창 밖을 내다보는데 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들이 코스튬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핼러윈 비슷한 행사를 하나 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목격한 건 축제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건 뭐, 여기도 축제야?


우리가 축제를 몰고 다니나 보다. 베네치아에서 얻어걸린 축제로도 충분히 신기했는데 말이다.

아주 작은 마을인걸 감안하면 꽤 큰 축제였다.

꼭대기에 있는 숙소로 올라가는 길, 작은 광장에선 사람들이 조그마한 무대를 설치해 놓고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익숙한 노래가 폭죽처럼 팡 터졌다.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 어허, 어허


우리는 다 같이 외쳤다.

“어? 한국 노래!!!”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우리 다 같이 내려??”


하지만 아이들은 흥미가 없었다.

“배고파”


“빨리 고기 먹어야 돼.”


케이팝이 울려 퍼지는 마당에 그냥 지나가긴 아쉬웠다. 본인들이 이미 시끄러워서일까? 우리 아이들은 시끄러운 음악이 쿵쾅대는 걸 싫어한다. 사실 나도 축제고 뭐고 돼지고기 생각이 간절하긴 했다. 돼지가 없는 나라에 살면 나도 모르게 삼겹살에 집착하게 된다.


또 지금 저 젊은이들이 기대하는 ‘한국인’은 곧 ‘로제’ 일 수 있음을 떠올리며 섣불리 내리지 말자 싶다.


숙소에 도착해서 아저씨한테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 동네 축제인가 봐요!”


눈이 동그래진 아저씨는 남의 동네 얘기하듯 한다.


“그런가 봐.. (Yes, yeah..)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덧붙인다.


“너무 정신없어. (Chaos.)"


내가 잘 못 알아듣고 “뭐라고?” 하니

‘이 표현이 맞나’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작게 말했다.


Chaos.


아저씨의 순박한 얼굴에 ‘나는 이 축제 반댈세’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올라오며 우리가 본 축제 속의 인파는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이 산골마을에서도 청춘들은 피가 끓나 보다.


숙소로 돌아간 우리는 신나게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활짝 열어젖힌 창문으로는 매서운 바람과 함께 ‘아파트 아파트~’가 끊임없이 쿵작 대고 있었다. 이탈리아 산골마을에 울려 퍼지는 ‘아파트’! 그것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듣고 있다니. 술기운 때문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드높은 케이팝의 위상 때문인지,

코 끝이 찡한 바람조차 청량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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