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5년 전이던가, 제주의 낡고 작은 시골집 앞이었다. 그때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던 외국인의 문장을 난 언젠가 써먹어보고 싶지 않았던가.
이탈리아의 산골마을을 뒤로하고 떠나는 순간. 그 깨끗한 풍경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언젠가'가 바로 지금이야!
나는 배웅 나온 숙소 주인아저씨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사진 한 장 찍어주시겠어요?"
아저씨는 자기 집을 가리키며 말한다.
마치 내가 써놓은 극본의 대사를 읊듯 천천히.
여기서요?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This is perfect!
네. 바로 여기요.
맘 속에 준비해 두었던 영어를 이토록 퍼펙트하게, 자연스럽게 말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투박한 미소를 띤다. 뭔가 더 말하고 싶지만 표현이 생각안 나 말을 못 잇는 듯 늘
"Yes, yeah.."라고 할 뿐이다. 타이밍도 애매하게 약 2초간의 시간차를 두고 돌아온다.
"맞아, 정말 그래!",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 이런 느낌이 아니라
"아. 그래 보여?", "그런가 봐.." 정도의 느낌이다.
왠지 모르게 아저씨의 그런 반응이 더 좋았다. 사심이 없어지는, 담백한 맛의 대화라고 해야 할까. 피차 표현할 말을 잘 몰라서 차라리 좋았다. 쓸데없는 말들이 넘치지 않아서.
나이 먹으면서 아름다운 장소를 떠날 때, 가슴 언저리가 찡하다. 시간을 붙잡아두고픈 마음이 생긴다. '살면서 언제 또 여기를 와 볼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 뒤를 돌아본다. 마지막 같아서 못내 아쉽다.
무계획으로 떠난 이번 여행은 완벽했다. 딱 우리가 원한만큼 보았고 얻었고 느꼈으니까.
뒤돌아보는 풍경 속에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 오묘했던 순간순간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다시 야무지게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우리들. 그곳에는 어떤 것은 내려놓고 어떤 것은 받아든 새로운 우리가 있었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한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이 새삼 애틋하다.
마을을 떠나며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을 확인했다. 예쁜 집은 반토막 나 있고 귀퉁이엔 아저씨의 손가락이 큼지막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웃었다.
이건 정말,
끝까지 완벽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