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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축구 Dec 05. 2022

3-5. 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직면.

숙소로 돌아와서 게임 내용을 다시 복기 하기 시작했다. 괴롭고 부끄러웠지만,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꼭 해야만 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하늘. 생각이 많을 때마다 숙소에서 저 파란 하늘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천천히 첫날 연습게임을 되돌아보니 오래간만에 하는 아주 빠른 템포, 강한 압박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맸다. 몸이 굳어 쉽게 오는 볼을 흘렸고 킥은 부정확했으며 활동량은 부족했다. 축구고 뭐고 이 경기장에서 나가고 싶다는 아주 나약한 생각을 하게 됐다. 적당히 뛰다가 교체를 당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약했다.


다음 날, 훈련을 가는 지하철, 기차 안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온갖 생각을 하다 나온 결론은 '즐기자' '부딪혀보자' 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들보다 못한 건 조금 부족한 '체력'이다. 자신감만 가지고 찬다면 내가 그들보다 못할 게 없다고 스스로 되뇌었다. 


그런데 웬걸 첫 훈련 타임에 셔틀런을 뛴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매주 화요일은 체력훈련을 하는 날이다.) 고강도 체력훈련을 한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축구부와 운동했지만, 아무리 적어도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친구들과 같이 훈련을 한다는 게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끝까지 해낸다 라는 생각이었다. 고질적인 오른쪽 무릎 통증이 찾아왔지만 뒤처지지 않으려 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으니, 팀원 친구들이 와서 말을 걸어준다.


'몇 살이냐, 어디서 왔냐'


별 말 아닌데도 날 팀원으로 받아 주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첫 타임 훈련을 함께했던 피지컬 코치. 아주 작은 독립구단이었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훈련 세션을 모두 준비해줬다.


 그렇게 힘든 체력훈련 이후 찾아온 두 번째 연습경기 타임. 첫 날처럼 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딱 하나만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다. 즐기자!' 


몸에 힘을 빼고 공에 집중했다. 패스 하나가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드리블 하나로 선수를 벗겨 냈을 때 희열이 느껴졌다. 축구가 재밌어졌다. 


왼쪽 윙으로 공이 간다. 내 앞에 공간이 생겼다. 망설이지 않고 뛰어가자 왼쪽에서 공을 내준다. 순간적으로 수비수는 못 따라왔고, 골키퍼가 나를 막으러 나온다. 나오는 걸 보고 오른쪽 구석으로 감아 밀어 넣었다.

첫 골이다. 비록 자체 연습경기이고 이 글 말고 어디에 건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겠지만, 내가 꿈꿔왔던 '축구 선수'로서의 무대에서 골을 넣었다. 다시없을 이 순간, 내가 꿈꿔왔던 시간들. 훈련 두 번째 날은 이렇게 끝났다.


이렇게 나의 축구선수 생활은 시작됐다.


메시 닮은 친구가 좋은 골이라고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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