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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fútbol es mi vida

축구는 내 인생

by 이축구

건물주와 월세계약을 해야 해서 사업자를 냈다. 인스타계정명 '축구는 내 인생'을 스페인어로 쓴 'El futbol es mi vida'였다. 가게명은 앞 글자만 따서 '엘 풋볼'로 정했다. 엘풋볼의 공간구성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었고 아주 작은 계획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공간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한 문장은 아주 명확했다.


'나의 낭만은 축구인데, 당신의 낭만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나의 낭만 '축구 선수'라는 꿈을 실현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표현하고 싶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이름 모를 작은 바의 분위기가 났으면 했다. 원래의 칵테일바 인테리어가 멕시코풍 분위기를 내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가게가 긴 형태라 더욱 좋았다.(아르헨티나에는 길쭉한 매장과 술집이 많다.)


그런데 인테리어 경험이 전무한 내가 덤비려니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이 분야에 경험이 많고 감각이 있는 친구 '이강석'을 공간으로 불렀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열심히 설명하며 아르헨티나 사진들을 보여줬다.

IMG_4752.jpeg 아르헨티나를 설명하며 보여줬던 사진,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텔모 지역에서 직접 찍었다.


'아르헨티나는 유럽 같아, 그런데 또 남미 같아'

'유럽처럼 너무 고풍스러워도 안되고 멕시코처럼 너무 유난 떨어서도 안돼'

'예산은 이 정도야'


역시 경험 많은 친구 강석이는 쓱쓱 둘러보더니 이내 큰 틀을 잡아줬다.


'바테이블 위에 찬장 쳐내버리자. 이거 답답하다.'

'천장을 합판으로 댔으면 좋겠다. 그건 사람 불러야 해'

'외창을 통창으로 바꾸자'

'천장 한가운데 실링팬 달면 분위기 좋겠는데? 그건 아르헨티나스럽지?'

'타일 이쪽 떴다 이거 까네 버리고 새로 타일공사해야겠다.'


전문가는 내가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밑그림을 그려주었다. 나에겐 밑그림정도면 충분했다. 세부적인 그림은 공사를 진행하며 그때그때 해결하기로 했다.


1. 바테이블 상부장 뜯어내기

-강석이의 소개로 아주 저렴한 철거업체에 맡겼다. 약 반나절이 걸렸고 30만 원이 들었다.

-빠루를 들고 직접 할까 생각해 봤지만 쓰레기 처리 비용까지 생각하면 별차이 없을 것 같아서 진행했다.

IMG_7325.jpeg 상부장을 떼고 나니 배선정리가 필요했다.

2. 천장공사

-가장 큰 공사였다. 레일등은 셀프로 직접 떼어 낼까 하다가, 상부장을 떼어내고 나니 전기 배선 정리가 필요해서 숨고에서 전기기사를 불렀다.

-전기기사님들은 순식간에 필요 없는 배선 정리와 레일등을 떼어주었다. 천장공사를 바로 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 주었다. 15만 원이 들었다.

-목공업체를 불러 견적을 받고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공간이 협소한데 천장 모양이 비대칭이라 예상 공사시간보다 한참 더 걸렸다. 정말 좋은 업체 디자인 하다르 사장님을 만나 아주 꼼꼼히 해주셨다.

-천장에 나무 결 느낌을 살려주는 오일스테인은 직접 발랐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무훈이가 특히 고생해 줬다.


현장 사진. 디자인하다르에서 애써주셨다.
IMG_7507.jpeg 무훈이가 없었다면 절대 혼자 못했을 작업.

3. 외창공사

-천장 공사가 썩 마음에 들었기에 같은 업체에게 맡기려고 견적을 부탁했다.

-지금 현재 외창의 프레임이 약해 통창으로 하면 뒤틀림 현상이 발생할 거라고 추천하지 않았다.

-업체분이 프레임이 시야를 가리는 것이 거슬리면, 날 좋은 날에는 창을 떼네고 장사하는 게 어떻냐고 했다.

-그게 차라리 낫겠다 싶어 진행하지 않았다.

IMG_8663.jpeg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도 춥지 않다면 창을 떼고 장사를 한다.


4. 타일공사

-매장 한쪽 벽타일이 떠있었다. 그래서 일단 까냈다.

-까낸 다음 여기에 뭘 해야 하나 싶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닐다 마주쳤던 수많은 벽화가 떠올랐다.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정말 맘에 드는 작가를 찾았다. 'WOOZAKA'는 마라도나를 주제로 개인전도 열었던 작가였다.

-연락을 했고 만났다. 그리고 벽화를 부탁했다.

IMG_7688.jpeg 타일을 꺼낸 자리에 퍼티를 발랐다. 벽화를 그리고 있는 'WOOZAKA'


이 정도 큰 공사가 진행되고 나니, 세부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게에 필요한 맥주잔부터 그릇, 튀김기, 오븐 같은 집기부터 메뉴구성, 주류업체 선정, 가격책정, 네이버지도 등록 등등등 해야 할 일이 끊이질 않았다. 쉴 새 없이 거의 두 달간을 매달렸는데 도대체 끝날기미가 안보였다.


그러던 와중 네이버 지도에 업체를 등록하려고 하는데, 간판사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간판은 계속해서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요즘 힙한 가게들처럼 간판을 달지 말까도 생각했었다. 아니면 건물 외벽에 직접 페인트를 칠할까도 생각했었다. 결국 간판을 어떻게든 올리기로 결정하고 숨고에서 간판 업체를 알아봤다. 레퍼런스로 생각하는 사진을 올리라기에 별생각 없이 며칠 전에 다녀온 '올디스 타코'의 사진을 올렸는데 짧은 메시지가 왔다.

IMG_7573.jpeg 을지로의 핫한 타코집 '올디스타코'


"그 네온 제가 했습니다."


바로 미팅을 잡았다. 그리고 치열하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스타일을 찾았고 간판디자인을 완성했다. 그리고 간판 올리는 날짜를 잡았다. 그 날짜를 오픈날짜로 잡았다. 달려있던 간판에 올라가 상호명을 쓰고 오픈날짜까지 박아버렸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이다. D-day 박고 공표해 버리기. 8월 23일 엘풋볼의 오픈날로 정해졌다.

IMG_8126.jpeg 정말 준비할게 여전히 많았지만 오픈날은 8월 23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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