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고기를 두고 소시지를 먹지?
2019년, 축구선수에 도전해 보겠다고 아르헨티나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돈을 아끼려 애썼다. 뛸만한 팀을 찾는 동안은 어떻게든 돈을 아껴야만 했다. 무엇이든 '가성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잠자리든 먹거리든 싼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골랐다. 묵었던 숙소는 여행객들이 아닌 아르헨티나 현지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왔다가 잠깐 묵어가는 곳이었다. 그만큼 저렴했지만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었고 밤에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먹는 것도 사 먹기보다 직접 해 먹으며 식비를 절약했는데, 살인적으로 싼 소고기 값 때문에 큰 생각하지 않고 소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정육점은 우리나라에서 편의점만큼이나 흔했기 때문에 온갖 부위의 소고기를 사다가 구워 먹었다.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영양면에서도 맛에서도 훌륭한 소고기가 싼 것은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외출이 길어지면 어쩔 수 없이 외식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길거리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도시 어디서든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소고기 샌드위치를 시키면 거친 바게트에 소고기 한 덩이를 턱 올려줬다. 그 위에 준비되어 있는 소스와 잘게 썰린 야채를 흩뿌려 먹었다.(그 소스가 아르헨티나 고기소스 치미츄리, 잘게 썰린 야채가 살사 끄리오샤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사 먹을 때마다 의아한 점이 있었다. 음식을 먹으며 둘러보면 현지인들은 소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보다 소시지가 들어간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이었다. '더 싸서 그런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가격표를 보면 거의 같거나 아주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지인들은 소시지가 들어간 빵을 더 선호했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소시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좋은 고기가 들어가진 않았을 거야'
'고기 말고 밀가루가 첨가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항상 소고기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그러다 아르헨티나에서 지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 '초리빤'을 주문했다. (아르헨티나식 '초리조'가 들어간 '빵'이란 뜻이다.)
초리빤은 내 예상을 아예 뒤집어엎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소시지와는 아예 달랐다. 소고기의 육향과 온갖 향신료가 어우러졌다. 육즙이 짭조름하게 흘러나오면 거친 바게트를 적셔 부드럽게 해 줬다. 곁들여 먹는 치미츄리는 초리조의 맛을 증폭 시켰고 끄리오샤는 입을 개운하게 해줬다. 이렇게나 맛있는 것을 지금까지 그냥 지나친 것이 억울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길거리음식을 시킬 때나 식당에 가서도 초리조, 초리빤을 우선적으로 시켰다.
그래서 '엘풋볼'에서는 무조건 초리빤을 팔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초리빤을 팔기 위해선 두 가지만 있으면 됐다. 맛있는 '아르헨티나식 초리조'와 '바게트'. 아주 단순했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바게트야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식 '초리조'는 제작하기도 그렇다고 직접 만들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소시지 OEM 업체 수십 군데를 찾아봤지만, 나 같은 구멍가게에서 주문하는 양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리고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구글링만 하다가 혹시?라는 마음에 네이버에 검색해 봤다.
'아르헨티나 초리조'
그러다 '살루메리아'라는 스마트스토어를 발견했다. 온갖 가공육을 제작하여 팔고 있었다. 그 가운에 아르헨티나식 초리조를 발견했다. 나는 맛이 궁금해서 바로 주문했다.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들어간 재료를 보니 돼지고기만으로 초리조를 만드는 듯했다.(아르헨티나 초리조는 돼지고기도 조금 들어가긴 하지만, 소고기가 메인 재료이다.)
그런데, 이거 아르헨티나의 초리조 맛이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약 80퍼센트 이상 아르헨티나 현지의 맛이었다. 나는 무턱대로 살루메리아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