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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Welcome to the JUNGLE

by 이축구

마이클 조던에게 한 신인선수가 파울을 범했고, 마이클 조던은 자유투를 얻었다. 그 신인선수는 파울에 그치지 않고 마이클 조던에게 도발했다.


"당신이 아무리 농구의 신이라도 눈감고 자유투는 못 넣을 거야"


마이클 조던은 그 도발에 씩 웃으며 응수한다.

스크린샷 2025-01-02 오후 7.09.01.png 눈 감고 자유투를 던지는 마이클 조던

마이클 조던은 자유투에 성공하고 그 선수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Welcome to the NBA"


충분한 계획도 그렇다고 돈도 없었던 '엘풋볼'의 오픈 날이 다가왔다. 해야 할 일들이 쏟아졌지만, 그렇다고 못해낼 정도의 일들은 아니었다. 시간이든 노력을 들이면 그 일들은 순차적으로 해결됐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나섰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밖은 전쟁터야'

'기어코 정글로 나가는구나'


같은 경고성 말들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크게 당황하거나 낙담하는 일들은 없었다. 오픈을 준비하며 팔로워들을 모아 행사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그들을 대상으로 가오픈을 해보며 엘풋볼의 부족한 점과 문제점들을 찾아냈다. 벽화도 성공적으로 완성됐고 인테리어, 집기 같은 것들도 하나씩 채워져 갔다. 모든 게 순탄해 보였다. 그래서 오픈날로 정한 2024년 8월 23일은 더욱 설레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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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외벽 일부를 아르헨티나 스럽게 칠했다. 2.팔로워들과 풋살을 했고 뒷풀이 행사를 엘풋볼에서 했다. 3.벽화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내가 정글을 얕봤다.
계획은 이랬다.

-점심시간 전에 '엘풋볼'의 간판을 올린다.

-오후에 식자재 등 오픈 준비를 한다.

-저녁 7시 아주 멋지게 엘풋볼을 오픈한다.


네온으로 제작한 간판은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서 마무리 작업과 함께 준비되고 있었다. 아무리 1층이라도 간판을 달려면 스카이차가 필요해서 좁은 골목에 스카이차도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조금씩 문제를 일으켰지만 애써 무시했던 건물주끼리의 갈등이었다. '엘풋볼'이 세 들어있는 건물의 건물주는 총 4명인데, 어머니와 그 자제들이었다. 즉 가족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사건이 생겼는지 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건물주 넷 중 한 분이 간판을 올리는 것에 딴지를 걸고 차를 빼주지 않았다. 법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그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경찰이 와서도 그들을 설득했지만 도통 설득이 되지 않았다. 추측건대, 한 명의 건물주가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려는 듯했다.

IMG_8269.jpeg 경찰들도 설득해 보지만 설득이 안 됐다.

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만약 오늘 이 간판을 못 올리게 되면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나는 강하게 맞섰다. 영업방해로 고소를 불사하겠다고. 하지만 막무가내였다. 자기는 절대 차를 빼 줄수 없고 간판을 올리게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다른 건물주 세명에게 연락했다.


'가족끼리의 문제는 가족끼리 해결하세요. 왜 내가 당신들의 문제 중간에 끼어야 합니까?'


다른 건물주 셋 중 몇 명도 현장에 왔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간판이 올라가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다. 간판을 달기 위해 현장에 온 전기기술자, 스카이차, 간판제작자는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본능적으로 이들이 점심 먹고 오기 전까지는 끝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야 오늘 오픈이든 뭐든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감성에 호소하기로 했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다 해 드릴게요. 제발 장사 좀 하게 해 주세요. 저 오늘 이거 오픈 못하면 길바닥에 나 앉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오픈하는 거예요. 제발요.


30분을 거의 빌다시피 해서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때쯤 간판 기술자들이 돌아왔고, 나는 그때서야 간판을 올릴 수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정글'이라는 말을 이해하고 체감했다.

IMG_9997.jpeg 혁이창의 오픈 선물 포장지 "Welcome to the Ju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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