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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

오직 기세.

by 이축구 Feb 03. 2025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오픈 초 '엘풋볼'을 돌아보면 여러모로 다양한 부분에서 참 어설프기 그지없다. 손으로 써 비치한 메뉴판, 허전한 내부 인테리어, 애매한 맛의 메뉴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마치 실력도 체력도 별로인 축구선수였지만 자신의 최선을 다해 뛰는 모양새였다. 엘풋볼에 완성되어 있는 것은 그 '기세'하나였다. 

지금 보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는 메뉴판. 오직 '기세'로 장사했다.

정말 고맙게도, 많은 사람들은 '기세'뿐인 펍에 찾아주었다. 어설픈 메뉴판도 낭만 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물론, 아쉬운 소리를 늘어놓느니 조용히 발길을 끊은 손님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인스타를 보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오며 가며 찾아온 동네 사람도 꽤 있었다. 정신없이 약 2달가량이 지나갔다. 소위 오픈빨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가게 매출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가게는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첫 달에는 매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처음 하는 요식업이라 신경 쓸게 너무나 많았다. 메뉴의 레시피는 변경되기 일쑤였고, 조리기구도 손에 완전히 익지 않아 버리는 식재료도 많았다.  열심히 하면 돈은 벌리겠거니 했다.

지금과 사뭇 다른 밀라네사, 그때는 저 맛과 비주얼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계산해 보니 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거의 없었다.

월세, 알바인건비, 식재료값, 전기세 등등 고정비를 다 털고 나니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거의 없었다. 내 인건비를 계산하면 오히려 적자였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돈'만 바라보고 차린 매장은 아니지만, 돈이 벌리지 않으면 이 공간을 유지할 동력과 힘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엘풋볼'의 매출을 높일 방법들을 고민했다.


"전단지를 만들어 인근 석촌호수에서 뿌려야 하나"

"당근마켓에 광고를 태워볼까"

"자꾸 전화 오는 마케팅 업자들에게 마케팅을 맡겨볼까"


별의별 생각과 자잘한 아이디어들에 갇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망감도 같이 밀려왔다.


"내가 '술집'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가게만 열면 손님이 쏟아져 올 줄 알았는데..."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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