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3.
우울증은 종종 감기에 비유된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굳이 다른 질병에 비유하자면 감기보다는 비염 쪽에 가깝다. 비염환자는 비염이 아닌 상태를 떠올리지 못한다. 아주 우연히, 코가 잠시 뚫려 잠깐의 상쾌함을 느끼곤 하지만, 금방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너무 익숙해져서. 우울증도 그렇다. 행복이나 재미 같은 건, 아주 드물게 느껴진다. 그래 잠시일 뿐 다시 평소와 같아진다. 그래서 분명히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시간과 사람 곁에서 그렇지 못한다. 너무 익숙해서. 이런 상태로 너무 오랫동안 살았다. 물론 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몇 년간 사라졌던 공황발작이 재발해서 가까운 병원에 방문했다. 몇 가지 검사를 다시 하고, 왜 빨리 안 왔냐는 질문에 "몇 년 전에 심했을 때보다 덜해서요"라고 답을 하니 그게 더 위험하다고 한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어떻게 견디고 있냐는 질문에, "이빨로 볼 안쪽을 피날 때까지 씹어요 현실감 들 때까지"-하고 입을 '아-'하고 손가락으로 벌려서 안을 보여줬다. 그러고 나니 순간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의사 선생님은 웃기지 않았나 보다. 결국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
약은 거부감이 있다. 예전에 틱증상이 나온다거나 몇 가지 부작용이 심했다. 근데, 뭐 설득당했다. 늘 그렇듯 정신과는 무슨 약인지 설명해주진 않는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당부가 덧붙곤 한다. '다시 내원할 때까지 절대로 빼먹지 않고 먹을 것'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누가 버리고 간 영수증 따위로 학을 접고, 책상에 올려놨을 때쯤 데스크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집에 와서 대충 눕기 전에 약을 삼켰다. 플라시보 효과일지도 모르겠지만, 명료해진다. 지독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검은 벽 같은 게 허물어져 밝아진 느낌이다. 누군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아무렇지 않다. 문자 그대로 아무렇지 않다. 너무 괴물 같은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일어나니 집이 너무 지저분했다. 그래도 청소만큼은 꾸준하고 열심히 해왔는데. 언젠가부터 안 치운 것 같다. 두 평도 안될 화장실을 한 시간을 넘도록 청소하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옥상에 올라갔다.
명료하다. 락스 때문인지 코가 뚫렸다. 아주 오래전에 맡았던 바닷가 호텔 냄새 같은 게, 뇌 속 어딘가까지 밀려들었다. 지저분했던 생각들이 씻겨나가서. 밑에 가려져 있던 오래된 시간들 떠올랐다. 여름 특유의 습하고 따뜻한 바람 냄새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나를 덜 견디게 되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갑째로 던져버렸다. 하나씩 해나가는 것보다. 하나씩 안 해가는 게 더 쉽다.
몇 년 전에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 가사가 계속 맴돈다.
"그래 난 항상 잘못된 것을 찾아내. 넌 내 이상한 점들을 너무 오랫동안 견뎌왔어. 난 내가 싫어하는 것을 찾아내는 데 천부적이지. 그러니까 우리 건배라도 할 때인 것 같다. 병신, 쓰레기 내가 아는 모든 새끼와 그 병신 짓을 계속하는 새끼를 위해서. 그래. 자기야 나한테 계획이 있어. 최대한 빨리 나로부터 도망쳐."
그래도 굳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