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의 끝

2025.07.05.

by 이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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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비가 내리고, 너무 더웠다. 눈에 보이는 아무 카페에 들어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그냥 시간이 죽는 걸 기다렸다. 그러다 며칠째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답장을 못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마침 잠들기 직전이었고, 그 메시지가 모바일 청첩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바일 청첩장은 익숙하다. 처음도 아니고, 낯설 것도 없다. 그러니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청첩장 바로 전의 메시지였다. 5년 전. 다음에 꼭 보자는, 그 약속 하나. 나는 답장을 하기 전에, 그 짧지만 오래된 행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10년 전쯤이다. 3,4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복학한 직후였고, 나는 수업을 마친 참이었고, 당신은 퇴근을 마친 참이었다. 청량리에서 만났고, 대충 삼겹살에 소주를 시켰다. 주황색 형광등으로 밝혀진 오래되고 낡은 가게였다. 그렇게, 옛날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술에 취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라는 어투로. 예전에, 나를 많이 좋아했었다고. 나는 그날도, 지금처럼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우리를 오래된 노부부 같다고 했다.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아끼지만, 남녀 사이의 애정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사이. 당신은 내 친한 친구의 연인이었고, 나는 당신의 친한 친구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 둘 다가 아니게 된 뒤엔, 서로가 너무 바빴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어떠냐고는 물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 당시에 '지금도 그렇다'라고 말했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때도, 편견 없이 내 편이 되어 준 사람. 오랜 시간 바라던 걸 이루지 못해 자격지심에 빠져 있을 때,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 지루하기만 했던 나의 20대에, 몇 안 되는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 당신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를 바란다.


그러니 그 행간은, 아마도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결혼 소식을 전하는 게 혹여 무례하게 느껴질까 봐 망설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을 마주하여 청첩장을 건네기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지나치기엔 내가 서운해할까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째 답하지 못한 메시지에 질문으로 답을 썼다.


'혹시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결혼한다는 거라 미안한데, 직접 만나서 청첩장을 주기엔 너무 바쁘고, 그렇다고 안 알려주면 서운할까 봐 모바일 청첩장이라도 보낸 거임?'


잠시 후, 당신은 너무 정확해서 소름 돋았다고 했다. 나는, 고맙고 행복하라고 답했다. 곧이어, 감사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당신은, 고맙게도 참석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더는 없을 것이다.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내가 서운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한다. 충분했다. 누구도 굳이 마침표를 찍지는 않았지만,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이제는 끝났다. 비가 그치고, 회색 구름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끝나기에 딱 좋은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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