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의 당신에게

2025.07.12.

by 이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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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방 정리를 했다. 정리의 기본은 물건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물건을 버리는 게 참 어렵다. 그리하여 몇 주전 다녀온 창경궁 입장표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몇 걸음 옮겨 옷장 맨 밑 서랍에 넣어버리고 말았다. 열린 서랍에서 눅눅한 종이 냄새가 났다. 그 서랍에는 입장표, 콘서트표, 피아노악보, 편지들, 오래된 일기장들과 아스테이지에 박제된 벚꽃 잎 같은 것들이 있다. 나에게 서랍은 버리지는 못하지만, 펼쳐 보이지 못하는 졸업앨범과 같다. 나의 부끄러운 생애는 꽤나 직설적이므로.


그 서랍은 내 삶의 부스러기를 버리는 쓰레기통과 같지만. 가끔씩 그 안의 물건들과, 같이 넣어버린 사람들과, 그 마음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러니까 또는 그리하여, 아스테이지에 박제된 꽃잎을 보고 그 사람을 떠올린 건 계획된 바는 아니지만 아주 우연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다.


그 꽃잎은 내가 처음으로 간 꽃놀이에서 주운 것이다. 나는 '꽃'과도 '놀이'와도 가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자취방에서 가까운 대학교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꽃놀이 명소였고, 그 사람과 같이 갔었다. 그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때 경제학 수업이었다. 눈이 안 좋아서 강의실 맨 앞에 앉았던 나와, 맨 앞에서 수업을 듣고자 했던 그 사람은. 고등학교때와 같이 누가 정해준 자리도 아니었지만 매주 옆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다.


그 사람은 수학을 잘했다. 잘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가끔 교수님이 담배를 피우고 오기 위해(그 당시엔 몰랐지만) 문제풀이 시간을 주면 그 사람은 옆에서 사각사각 연필을 쉼 없이 움직이며 정답을 맞히곤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그 사람처럼 능숙하진 않았으므로, 적당히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그 사람의 필통에 가지런히 놓인. 잘 깎여진 연필들과 그 위에 쓰인 이름들을 보며, '한자일까 아니면 순 한글일까? 따위를 고민하곤 했다. 또는 '보통 대학생은 이름을 안 써놓지 않아?' 같은.


"히브리어예요"


대학교에 입학해서 한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통성명을 한 사람과 내 생애 처음의 꽃놀이를 가기로 한건 내가 계획한 바는 아니지만 아주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아마 그 사람은 서울에서 꽃놀이로 유명한 그 대학교를 며칠 전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도착까지 10분가량 걸리는 버스에서 그곳이 얼마나 예쁜지 설명하려고 애를 썼으므로.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지만.


벚꽃이 만개한 캠퍼스에서 그 사람은 벚꽃은 질 때가 진짜 예쁜데 아쉽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꽃놀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므로. 고개를 위로 들어야만 하늘이 보이는 벚나무 숲 속에서 '팔만대장경이 벚나무로 만들어진 거 알아?'라는 질문을 했던 것이 확실히 기억난다. 그 사람은 꽃을 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벚나무의 내력에 대해서 상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또는 그 사람에게 수년간 놀림을 받았으므로. 그 후로 다시 수년이 더 지나 놀림이 멈추고, 여느 관계와 같이 내가 당신을 만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유가 당신과 내가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또는 하지만, 우리는 만나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가끔씩 당신을 보곤 했었다. 다만 네모난 서랍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나와 당신과 벚꽃이 지는 배경 속의 3인칭으로. 그 장면에서 나는 당신에게 무슨 말을 건넸어야 했었나. 고민하곤 했었다. 극작가가 되어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그러면 다시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시간이 지나 벚꽃이 지는 대학 캠퍼스에서 눈이 자욱한 철원으로, 비가 오던 홍콩, 또는 안개가 자욱한 뉴욕 맨해튼 혹은 가본 적도 없는 우유니 사막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과 땅과 수평선이 모두 당신인 곳에서, 당신은 짙은 파란색 춤을 추고, 나는 당신에게 열 번은 고민한 대사를 건넨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나에게.


'널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 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 말을 할 때만은 당신과 나뿐인 정확한 2인칭으로. 저주받은 듯이. 나는 당신이 하지도 않은 말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이해받고자 다가갔고, 다가갈수록 나는 그들이 무서웠고, 무서워할수록 그들은 나를 좋아해 줬고, 그들이 나를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는 인간실격 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지극히 혼자가 되어서야 외로움 또는 토요일 새벽. 세상이 모두 죽어서. 나 혼자 살아 숨 쉬는 듯한 적막 속에서. 방정리를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나는 당신을 만나는 것을 그만하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기로 한다. 그제야 당신을 만나다는 것은,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끄러운 문장을 구태여 수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꽃 잎이 지고 나무만 남듯이. 그렇게 물건들만 남는 일이라는 걸 안다. 오래된 불교 경전과 같이. 또한 당신과 내가 특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란 걸 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란 것도 안다. 다만 당신은 꽃을 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벚나무의 내력에 대해서 상상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리 되었으리라. 그렇게 당신을 보지 않게 돼서야 나는 벚꽃은 질 때가 제일 아름답다던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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