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 폴댄스
내게는 상반되는 두 가지 욕망이 있었다. 남들 앞에서 멋지게 이야기를 하거나 남의 주목을 끌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와 상반되게 무대 공포증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서면 눈앞에 하얘지고 머릿속은 텅 비워진다. 그런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남들 앞에서 설 기회가 많았고 즐기지도 않았는데 그 순간을 또 그리워한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작박동이 빨라지고 입이 마르고 앞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학창시절에 학우들 앞에서 우연히 희극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객석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내가 마치 세상 꼭대기에 있는 듯한 흥분을 주는 도파민이 터지게 만들었다. 응원단장을 했던 친구역시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사람들 앞에서 박자에 맞춰 힘찬 동작을 할 때 흥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어려운 폴댄스 동작에 성공한 수강생은 도파민이 터져서 그 날밤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고백했다.
폴댄스는 단체로 하지만 폴타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한 사람씩 지도를 해준다. 자기 차례가 오면 폴 위에 올라가 방금 배운 동작을 하는 모습을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이 지켜본다. 긴장될 수밖에 없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더 부담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쳐다보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핀잔주는 사람은 없다. 성공하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쳐준다. '나이스'라는 소리가 골프장에서만 들리는 건 아니다. 폴댄스 교실에서도 '나이스' 소리가 울려퍼진다. 메인 동작을 단계적으로 하다가 도입과 메인, 그리고 폴에서 우아하고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까지가 끝이다. 대부분 자신이 했던 동작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남긴다. 수업시간마다 남긴 동영상을 보면 내가 얼마만큼 발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교실에는 영상존이 따로 있는데 할 때 다른 수강생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보기 때문에 매번 공연을 하는 느낌이 든다.
성공을 했을 때의 쾌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날 하루의 행복을 보장한다. 다음날 또 다른 동작을 하면서 실패를 맛볼 수 있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한 계단을 성큼 올라선 느낌이 든다. 폴댄스의 중독성은 그런 데서 나온다.
난 나이가 들어서 폴댄스를 시작했기 때문에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다는 심정으로 했다. 인버트라는 거꾸로 뒤집는 동작까지는 절대 못 갈 거라고 생각했다. 물구나무서기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급부터는 무조건 인버트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자꾸 하다보니 생각보다 인버트가 쉽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인버트할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다. 몸이 가볍게 위로 솟구칠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다. 거꾸로 서서 하는 동작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처음에는 술을 마신 것처럼 머리가 빙빙 돌고 공포스러웠다.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작과도 만나게 된다.
처음에 남미계의 아름다운 폴댄서가 폴을 타는 모습은 한 마리 새 같았다. 그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 때문에 나도 늦은 나이지만 폴댄스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폴댄스가 내 욕망 속으로 들어왔다.
사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나는 듯한 알바트로스라는 동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