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한 첫 가출

폭력 세계로의 노출, 가출

by 청년홈즈

자귀나무 꽃이 필 무렵, 나는 처음으로 가출을 시도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보를 던져 놓고 동무들과 강에 가서 멱감고 놀 궁리를 하는데 아버지 명령이 들렸다.

“병호야! 소 뜯기고 와라”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시기는 풀들도 저마다 살이 올라 지천이 누랭이(우리 집 소 이름)의 풍성한 식당이 되었다. 이때쯤 되면 집집마다 소들은 살이 올라 털에서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어른들은 소들을 핑계로 아이들 놀이를 빼앗았다. ‘소 뜯기기’는 동네 아이들의 필수항목이 되었다. 형제 많은 아이들은 누가 그 담당인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8남매 중 여섯째인 내가 ‘소 뜯기기’ 담당이 될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었다. 위에 형도 있고, 두 살 터울 동생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느 날부터 의례 날 부르셨다.


그날은 학교 파하고 오면서 동무들과 멱감고 놀자고 작당을 한 날이었다. 나는 오리 주댕이가 되었지만 감히 아버지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터벅터벅 소를 몰고 강가로 가 목에 소 줄을 감아 주고 산으로 몰아넣었다. 나처럼 소 뜯기기 싫은 몇몇 동네 형들과 동생들이 보였다. 소를 산에 몰아넣고 홀로 강둑에 앉아 하늘을 보는데 괜한 설움이 밀려왔다.

‘아버지는 왜 맨날 나만 시켜’

생각할수록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산마루 저녁노을이 울그락불그락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토끼 구름~ 나비 구름 짝을 지어서~딸랑딸랑 구름 마차 끌고 갑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맞지도 않은 동요 하나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구름 마차’가 왜 그리 서글프고 아리던지 노래를 부르는 사이 눈물이 그렁그렁 달렸다. 나는 동요도 슬플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에이~ 나만 미워하는 이노무집구석 안 들어가’ 나는 가출을 결심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동네 아이들 하나 둘 자기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산등성이를 타고 빠르게 내렸다. 멀리서 누랭이 방울 소리만 딸랑거렸다. 나는 느릿느릿 누랭이를 찾아 산에 올랐다. 나는 요놈이 어디쯤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큰 자귀나무 있는데 갔군’ 방울소리를 따라 가보니 누랭이는 혀를 낼름거리며 열심히 큰 자귀나무 잎을 따먹고 있었다. 누랭이를 끌고 내려와 다시 강둑에 앉았다. 노을은 벌써 가고 사방에 어둠이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가 풀밭은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스산함이 깊어진다. 키 큰 풀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 사이로 강물에 비친 반쪽짜리 달빛이 아른거리며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손짓하는 것 같았다. 온몸이 굳어지며 나도 모르게 누랭이 옆에 착 붙어 섰다. 누랭이의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혼자서도 잘 찾아가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식구들은 모두 마루에서 저녁 식사 중이었다.

“어메! 병호 안 왔었냐? 어쪈댜~ 병호 밥 읎는디”

느릿느릿 외양간에 소를 매는 나를 보더니 엄니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날 난 찬장 구석에 굴러 다니던 하지감자 한 알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그렇게 나의 첫 가출은 가출 자체 아니 식구 하나 빠진 줄도 모르는 내 존재를 확인하며 그저 한 끼 굶는 것으로 끝이 났다.

몇 년 전 어느 광고에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카피를 날리던 기억이 있다. 진작에 그 카피를 알았더라면 꼬맹이는 첫 가출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 참 클 나이 한 끼 저녁도 굶지 않았을 것이다.


맞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함부로 가출하지 말자!


P.S. : 방치 되는 폭력 가출

여성가족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4~6)·중·고등학생의 최근 1년 내 가출 경험률은 3.2%로 전년 대비 0.3%p 증가했다고 한다.(통계 시점:2021년) 청소년들의 주된 가출 이유로는 부모님과의 갈등이 62.4%로 주된 요인 이었다. 가출은 단순히 집 나갔다 들어오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아이는 가출하는 순간부터 폭력에 방치된다. 가출을 방치 하는것이 곧 폭력이다. 가출의 이유가 대부분 부모와의 갈등이라고 해서 온전히 부모 혼자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 문제를 감당 할 수 없다. 가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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