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는 마음속에 있다.

올바른 진로 교육이란?

by 청년홈즈

“진로는 정했냐?”

“응~1병으로 줄일라고”

“까불지 말고?”

“몰라 점수에 맞춰 아무 데나 넣어야지”


참이슬이 태어나기 전 학력고사 마치고 내 자취방에서 나눴던 실없는 대화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말이 다가오면 온 나라에 ‘수능의 시간’이 도래한다. 그 시간이 오면 수험생들은 초긴장 상태가 되며 수험생이 있는 가정은 온 가족이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한다. 수능이 끝나면 그 긴장의 시간도 끝날 것 같지만 정작 수능이 끝나면 그때부터 진짜 입시전쟁이 시작된다. 이미 결정된 수능 점수에 맞춰 자신에 맞는 대학을 찾아야 하고 또 각 대학에서 진행되는 수시전형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험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는 수능이 끝나고 난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대학 진학 전형방법이 무려 1만 7천여 가지나 된다고 하니 이런 복잡한 입시제도 하에서는 전문지식이 없는 부모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한 발짝 물러나 생각해보자. 위에 고민들은 반드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작되는 고민이다. 소위 말하는 SKY대나 인 서울 대학 등 유명대학 말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대학 입학 정원수가 수험생보다 많거나 비슷해졌다. 입학 정원수를 못 맞춘 몇몇 지방대학들이 묻을 닫았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2018년 기준에 우리나라에 대학(총 385개=248개 대학, 137개 전문대학)의 전체 대학 입학정원은 592,450명이었고 2019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58만 8823명이었다. (출처 교육통계서비스) 통계상으로는 이미 우리나라 대학 전체 입학정원은 수험생 수보다 비슷하거나 많은 것이다.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한다면 얼마든지 점수에 관계없이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꼭 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전제만 떼면 말이다.


한 때 나름 교육전문가라 자부하며 교육컨설턴트로 살았었다. 수능이 끝나 점수가 정해졌다면 너무 복잡하고 어지러운 전형방법에 목메지 말고 자녀의 적성과 장래 희망, 진로에 대해 차분히 대화해 볼 것을 권한다. 몇몇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탐색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자기 적성이나 장래 희망, 인생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소중한 시기를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언의 압박이 가미된 부모 입장의 진로 지도는 자기적성과 재능을 간과하게 되어 시간이 흐른 후에 후회할 수도 있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국문과 원서를 들고 갔을 때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 막혔다. “취직도 잘 안 되는 국문과 거기 나와서 뭐 하라고 그래? 어렵게 대학 가는 건데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조용히 자취방을 나와 원서를 찢어 버리고 내 맘대로 선택한 과가 정치외교학과였다.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며 호통치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패기가 준 정치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였다. 1학년 때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국문과 수업에 기웃거리기도 했으나 이내 학교생활에 묻혔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내 삶은 정치하고 무관한 교육을 업으로 18여 년을 지냈고 지금은 꽃과 나무와 함께하는 일을 하며 간간히 내가 좋아하는 글도 쓰며 살아간다. 잘 쓰지 못하지만 나는 글 쓰는 일이 참 좋다. 이 좋아하는 일을 ‘왜 이제야?’라는 생각에 그때 우겨서라도 국문과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가끔 후회해 본 적도 있다. 결국 돌아 돌아 이렇게라도 글쟁이 코스프레하며 살게 되니 참 다행이다. 이런 내 경험이 고삼 수험생과 부모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재직하는 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쌍둥이 아빠 사건이 있었다. 교사였던 아빠는 구속되었고 두 딸들도 퇴학처분을 받았다. 대학 서열 중심, 경쟁 중심의 사회분위기와 부모 중심의 잘못된 교육관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미래를 미리 규정 지어 버리는 일, 부모로서 아이의 재능을 제대로 보지 못해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도 넓은 의미로 폭력일 수 있다. 자녀의 삶은 자녀 것이다. 자녀 인생의 주인은 바로 자녀임을 명심할 일이다.


부모 맘대로 진로를 1병으로 정하지 말자. 진로는 자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들어 있다. 부모가 바라는 곳이 아닌 자녀가 진짜 바라보는 곳을 바라봐 주길 바란다. 명문 대학 입학만을 바라지 말고 자녀의 재능과 자녀가 진짜 하고 싶은 진로를 찾아가는 것을 도와주길 바란다.


이제는 나이 들어 ‘진로’가 진짜 1병으로 줄어든 술꾼이 된 전직 교육전문가이자 현 우주 평화주의자의 마지막 교육 컨설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오늘은 ‘처음처럼’ 마셔볼까? 아~ 그런데 얼마 전 청계산 옥녀봉에서 어떤 노인분이 '처음처럼'은 좌파 술이라고 목청을 높이던데 술 마시면서까지 이념논쟁에 휘말리기 싫고 어쩌지? 이래저래 우주 평화주의자의 길은 험난하구나.

진로1.jpg 추억의 진로 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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