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평화유지군의 죽음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침 출근길, 화단 옆 보도블록 바닥에 늘어진 지렁이 사체가 즐비하다. 흙 속에서 살아야 할 지렁이들이 간밤에 무슨 이유로 나와 저 시멘트덩이 위를 기어 다녔을까? 화단에서 그대로 살면 다른 지렁이들처럼 충분히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짝지을 때가 되어 사랑 찾아 나왔을까? 아니면 저 화단이 비좁아 다른 곳으로 이주를 결심했을까? 그도 아니면 갈매기 조나단처럼 세상에 대한 혁명을 꿈꾸며 나온 것일까?
날씨가 끄물끄물거리던 지난밤, 지렁이는 큰 결심으로 인적 드문 도시의 화단 밖으로 기어 나왔을 게다. 지렁이는 알지 못하였다. 이 도시는 힘없는 약자에게 그리 너그럽지 않다는 것을. 이 도시는 생존경쟁만 있을 뿐 배려나 관용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도시는 인간의 욕망을 벗어난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며 그 욕망의 실체가 배려 없는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지렁이는 끝내 알지 못하였다.
어쩌면 지렁이는 화단을 나오자마자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욕망의 도시는 후회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지렁이는 나오자마자 이 도시의 실체를 깨달았지만 이미 태양은 떠올랐고 온몸은 불에 타 들어가는 듯한 고통 속에 서서히 말라죽어갔을 것이다.
지렁이는 땅 속을 지키는 지구 평화유지군이다. 지렁이는 썩은 나뭇잎이나 동물의 똥 등 유기물을 먹고 배설하여 건강하고 비옥한 땅을 만든다. 지렁이의 똥을 분변토라 하는데 질소, 유효인산(Available Phosphate-P205), 수용성 칼륨(Soluble Potash-K20), 탄소, 유기물 등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비료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지렁이가 살고 있는 땅은 살아 있는 생명의 땅이고 지렁이가 없는 땅은 삭막한 죽은 땅이다.
지렁이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며 오늘도 지구의 땅을 지키고 있다. 지구 전체 땅속 생물체를 무게로 따지면 지렁이가 거의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또한 지렁이는 새, 두더지, 멧돼지, 고슴도치 등 많은 땅 위 동물들의 먹잇감이 되어 생태계 유지에 큰 역할을 한다. 지렁이는 살아서는 땅속 지구 평화에 이바지하고 죽어서는 땅 위 생명체들의 평화유지에 이바지하는 최전선의 지구 평화유지군인 셈이다. 그러므로 지렁이는 곧 우주평화유지군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루의 생존을 위해 출근하는 길, 죽은 지렁이 위로 많은 지구인들이 욕망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심히 스쳐간다. 비록 지렁이의 생을 끝났지만 지구 평화를 위해, 우주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생에 경의를 표한다.
무심코 지나쳤던 지렁이의 죽음을 한걸음 들어가 보니 그 죽음 속에 지구 평화와 우주평화의 신호가 들린다. 우주 평화주의자로 살겠다는 나는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지렁이의 아들이라는 설화가 있다. 설화대로라면 우리는 지렁이의 후손일 수도 있다. 안도현 시인은 또 이렇게 물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
혹시 아스팔트 길을 걷다 지렁이를 만나거든 시인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듯 지렁이 함부로 지나치지 말고 조상을 대하듯 자비를 베풀어 보자.
지구 평화유지군 지렁이의 명복을 빌며…
p.s.: 지렁이가 비가 오면 길 위로 나오는 이유?
피부호흡을 하는 지렁이는 비가 오면 호흡을 하기 위해 잠깐 땅 밖으로 나오는 습성이 있다. 사실 물속에서도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어 안 나온다고 바로 익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쁜 숨을 쉬어야 하니 잠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시는 이미 지렁이의 땅이 아닌 인간의 아스팔트로 바뀌어 있다. 땅을 빼앗긴 지렁이들은 비를 피해 나왔다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죽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