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겨라! 평화가 올지니
“형이 세상에서 제일 웃긴 사람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안 웃겨.”
몇 년 전 전주에서 국수장사할 때 들었던 후배의 말이다. 술이 제법 취해서 들었는데도 듣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랬다. 나는 진짜 웃기는 놈이었다.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한참 때 나는 캠퍼스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웃긴 놈이었다.
하루는 학교 앞에서 이 자칭 타칭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세 놈이 모여 누가 제일 웃긴 지 술 내기를 했다. 그날 나는 아쉽게도 2등을 했다. 캠퍼스 내에서 2등이면 엄청 웃긴 놈 아닌가? 뭐 그렇다고 그날 경합이 학교를 대표했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걸 증빙할 증거물도 없다. 그날 1등은 이과대 ‘검프(포레스토 검프)’가 차지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인문계 두 명이 이과 한 명한테 패한 꼴이다.
그날 경합을 벌인 두 친구가 훗날 내 결혼식 뒤풀이 사회를 1,2부로 나눠 봐줬으니 재미있는 인연이다. 후일담으로 그날 뒤풀이가 필요 이상으로 재미있었던 관계로 사람들이 집에 가질 않아 술값이 엄청 나왔었다. 결혼 첫날부터 부부싸움을 해야 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그 뒤로 두 친구는 이래저래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그들도 지금은 나처럼 안 웃긴가? 궁금하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후배 녀석은 한마디를 더했다.
“형이 확 재미없어진 때는 아마 회사에서 단장인가 본부장인가 하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부터 같아”
얼떨결에 한칼 먹었는데 찌른 곳을 다시 정확하게 돌려 찔렀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아팠다. ‘이 녀석이 원래 쓴소리 전문이었구먼.’
“형 책이 왜 안 팔리는 줄 알아? 내용은 그럴듯한데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
첫 책 출간하고 출간 기념을 빙자한 술자리에서 그 녀석이 던진 한마디가 다시 소환되었다. 잊고 있었는데 또렷하게 다시 떠올랐다.
‘야! 교육책이 다 그렇지 어떻게 재미있게만 쓰냐?’
속으로는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냥 삼켰다. 독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치부를 건드리면 누구나 아프다. 많이 아팠다. 그 이후로 아예 내 책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먼저 재미없음을 주지시켰다.
‘웃겼던 나는 왜 안 웃겨졌을까?’
나의 이십 대는 온전히 가난한 고학생 신분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느라 메뚜기 마냥 뛰어다녀야 하는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얼굴에는 항상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항상 활력이 넘쳤으며 마치 발이 땅에 안 닿는 사람처럼 날아다녔다. 가진 것 없어도 자신감은 늘 충만한 시절이었다. 후배 말 대로 그때 나는 한 웃김 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 바뀌기 시작하였다. 쳇바퀴 같은 조직 속에 나는 지워지기 시작했다. 웃김은 넥타이와 양복 속으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그나마 헐떡거리던 내 웃김은 아예 사망해 버렸다. 한 번 떨어진 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근 20여 년을 살았다. 웃김은 사망했고 재미도 사라졌다. 나는 안 웃긴 사람이 되었다. 그런 상태로 첫 책을 썼으니 후배 말 대로 재미없는 책이 돼 버렸다. 늦었지만 재미없는 책 읽어 내느라 고생했을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전주에서 국수 장사하면서 사업은 망했어도 얻은 게 많다. 그중에 하나는 손님들 만나면서 인생을 조금 더 알았다는 점이다. 그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웃음기 없는 경직된 얼굴로 갖는다는 점이다. 나이 먹은 것이 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훈장도 아니다. 나이 들면 경험에 의한 자기 고집은 더 강화된다. 그러다 보면 타인과의 대화는 점점 단절되고 고립되어 간다. 그러다 보면 세상과 멀어지게 되어 외롭고 웃을 일이 없다. 그나마 남아 있던 웃음마저 사라지고 얼굴은 더 경직되어 간다.
인생 짧다. 그리 살 일인가? 떨어지는 신체 기능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세상 보는 눈이 점점 경직되어 세상과 멀어지는 생각은 보완할 수 있다. 나이 들어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감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웃음을 간직할 수 있고 경직을 막을 수 있다. 노화는 육체적으로 약해지는 것이지 정신까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육체는 완화되더라도 지혜는 더 쌓이는 법이다. 지혜는 웃음의 밑거름이다. 노 신사의 촌철살인은 거기에서 나온다.
한 친구가 그랬다. 기차 타고 고향 가는데 기차 안 사람들을 살펴보니 어린 아이나 젊은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웃음기가 줄줄 흐르는데 중년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은 얼굴에 근심이 줄줄 흐르더라고. 아이는 세상을 아이 눈으로 보기 때문에 항상 웃음이 줄줄 흐르고, 나이 든 사람은 세상을 나이 든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근심이 줄줄 흐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가 되어야 세상을 더 웃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걱정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 아니니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살자. 웃으면 웃길 수도 있다. ‘아이 같은 웃음기는 듬뿍 넣고, 나이 든 근심과 고집은 싹 빼 버리고’
웃으면 복도 오지만 웃으면 평화가 온다. 지구에 평화가 찾아들면 우주 평화도 시작되는 것이다.
나에게 오늘부로 특명을 내린다.
‘골뱅아! (대학 때 별명, 골 때린다 골병호) 너 진짜 웃긴 놈이었어. 앞으로 웃기며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