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사람도 왕따 금지!
문열이 왔어”
“쭈쭈 쭈쭈~기다려 밥 줄게”
강아지가 아니다. 문열이는 내 중학교 때 나와 동생들 손에 컸던 아기 돼지 이름이다.
돼지는 한 배에 7~13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 그때 우리 집 씨돼지는 무려 13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한 배에서 나온 새끼들은 제일 먼저 나온 문열이만 빼고 모습이 모두 비슷비슷했다. 문열이는 덩치도 작고 얼굴도 쭈글쭈글 생김새가 좀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젖 먹을 때마다 덩치 큰 다른 녀석들에게 밀려 자기 몫의 젖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런 문열이를 돼지우리에서 꺼내 젖병에 아기 분유를 타서 먹였다. 그 뒤로 문열이는 다른 형제들이 젖 먹을 시간마다 마당으로 꿀꿀거리며 달려왔다. 문열이가 우리 손에 크게 된 사연이다.
아버지는 어느 날 돼지 값이 오를 거라며 문열이 엄마가 낳은 13마리 새끼 중 수컷 3마리만 팔고 문열이를 포함한 나머지 암놈 10마리는 모두 기르겠다고 선언했다. 며칠 후 아버지는 뚝딱뚝딱 기둥을 세우고 함석을 올려 새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문열이에게 마당과 제일 가까운 첫 번째 집을 분양해 주었다. 젖도 제대로 못 먹고 자란 것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첫 집 문열이는 나중에 오히려 제일 덩치가 커졌다. 문열이의 어린 시절을 알기에 우리나 아버지가 하나라도 더 챙겼던 것이다.
한 배에서 태어나 비슷비슷하게 닮은 녀석들을 구별해 내기란 정말 힘들다. 우리가 키운 문열이는 알겠는데 나머지 아홉 마리는 그놈이 그놈 같아 도저히 구분이 안되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는 한 놈 한 놈을 모두 알아보았다. 그 비밀은 녀석들이 새끼를 밸 때쯤 풀렸다. 열쇠는 아버지 달력에 쓰여 있던 작은 글씨였다.
‘짝귀, 등짝흰줄, 허리혁대, 검댕이, 노랑대가리, 해골빨강, 문열이……’
날짜 옆에 이런 빨간 글씨들이 보이고 뒤에는 ‘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추리해보니 앞에 글씨는 돼지 이름이고 뒤에 ‘접’ 자는 그날 교미시켰다는 뜻이었다. 돼지우리에도 달력에서 본 이름과 날짜가 지붕 아래 구석에 쓰여 있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보고 돼지를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전에 안보였던 돼지마다의 특징이 선명하게 보였다.
'짝귀'는 한쪽 귀는 서 있고 다른 쪽 귀가 구부러져 있었고, '등짝흰줄'은 등에 옅은 흰 줄이 나 있었다. '허리혁대'는 허리 쪽으로 얇은 흰털이 감고 있었고, '검댕이'는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에 유난히 검은 털이 수북하게 나 있었다. 제일 궁금했던 '노랑대가리'와 '해골빨강'이는 다른 돼지들보다 얼굴 털이 약간 누르스름한 놈이 노랑대가리였고, 정수리 쪽에 약간 붉으스름한 털이 나 있는 녀석이 해골빨강이였다. 나머지는 이름이 가물가물 한데 우리 아버지 참 센스쟁이에 재치만점인 분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약간 소아마비 증세가 있었던 얌전한 아이가 있었다. 그 친구만 보면 한 녀석이 그렇게 못살게 굴었다.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는 학교에서 늘 혼자였고 가을 학기쯤 전학을 갔다. 그때는 나도 어려서 그런 괴롭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말릴 생각도 못하고 그저 방관자로 지냈다. 문열이가 형제들 젖 먹을 시간에 우리 밖으로 쫓겨 나와 떨고 있던 모습이나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해 늘 혼자 있던 아이나 똑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형제들에게 왕따 당한 문열이는 아버지와 우리들 손이 아니었으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몇 해 전 왕따 폭행을 피해 옥상에서 추락사한 인천 중학생 사건이 오버랩된다. 사람에게도 돼지에게도 왕따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몇 년 전 동창모임에서 친구를 괴롭혔던 녀석을 만났다. 그때 그 아이를 왜 그렇게 괴롭혔었냐고 물었는데 그 녀석은 자기는 그런 적 없었다며 펄쩍 뛰었다. 정말 기억이 없는 건지 그랬던 자신이 부끄러워 기억이 안 나는 척하는 건지 발뺌을 했다. 분명 그 녀석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친구를 왕따 시켰었다. 혹시 이 글을 읽거든 꼭 당사자에게 사과하기 바란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방관자로 그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한 셈이니 한참 늦었지만 글로 나마 그 친구에게 사과한다.
왕따 없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이다. 평화란 다름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A/S: 돼지 키우기의 종말은 그리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다음 해 10마리 새끼들이 또다시 새끼를 낳아 우리 집 돼지는 근 100여 마리가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돼지 값이 폭락하게 되어 돼지 농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나는 좋아하는 돼지김찌치개는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때는 동네에서 거의 일주일에 한 마리 꼴로 돼지를 잡았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돼지김찌찌개를 무척 좋아한다. 특히 비계가 듬성듬성 붙어 있는 채로 끓인 돼지김치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