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에 정 때문에 울고 웃고
‘정을 팔 생각을 하다니’
형체도 없는 정을 팔아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있다. 오리온 초코파이 정은 인구가 약 1억 인 러시아에 연간 8억 개 이상 팔리는 국민간식으로 대우받고 있다니 과연 대단한 정이다. 이렇게 마트 진열대 위 초코파이에도 붙어 있는 정,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로 꼽는 이 정이란 무엇일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나도 모르게 들기도 하고, 지맘대로 떨어지기도 하는 정, 또한 미운 놈한테도 들고, 그놈에 정 때문에 살기도 하는 이놈에 정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이 움직여서 나타나는 것(感而遂通爲情/감이수통위정)’ 퇴계 이황은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 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오십에 읽는 주역’의 저자 역학자 강기진 선생은 정을 모든 사람의 심연에 공통으로 차지하고 있는 영성이라는 근원에서 싹터 올라온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또 어떤 이는 정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보이지 않는 포옹’이라는 멋진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은 꼭 사람에게만 드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간 들고 다니는 내 가방에도 정이 들고,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짖어 대는 옆집 누렁이한테도 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한 대상에 묻어 있는 내 마음’
한국인에게 정은 모든 세상을 보는 열린 마음이고 따뜻하고 넉넉한 포용의 마음이다. ‘한 숟가락만~’ 달라했다고 정말로 딱 한 숟가락만 주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이라면 참 정 없는 사람이다. 한 숟가락 위에 한 숟가락 더 얹어주는 넉넉한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정이다.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이규태 선생의 정에 대한 설명이 와닿는다.
‘정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으며, 색깔도 없다.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없다. 무형, 무상, 무취, 무미다. 그렇다면 구상세계에서는 없는 것이 정이다. 분명히 없는 데 있는 것이 정이다. 존재하되 역동적으로 존재한다. 그 없는 것에 손을 데고, 그 없는 것에 오장육부가 녹고, 그 없는 것에 살이 여윈다.’
한번 정들면 못 떨어지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으로 맺어지면 살아내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결혼 20년 차쯤 된 부부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말한다. ‘정 때문에 살지 뭘’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는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강현남은 남편의 가정폭력 피해자다. 그녀는 문동은을 돕는 대가로 남편을 죽여 달라는 살인 공모를 한다. 치가 떨리도록 미웠던 남편이 죽자 정작 강현남은 남편이 평소 좋아했던 옷을 입고 오열을 하며 바다에 유골을 뿌려준다. 미운 정이다. 미운 정은 싫은 데도 지맘대로 들어와 자리 잡은 정이다.
정은 이처럼 지맘대로다. 정은 주체적으로 내가 주기도 하지만 지맘대로 들어 버리기도 한다. 싫으면 보내 버리면 그만인데 한국인들은 들어버린 정 때문에 관계를 이어 나갈 수밖에 없다. 싫어도 관계를 이어 가야 하니 인내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놈의 정 때문에 화병이 생기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이렇게 복잡한 개념의 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고운 정까지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지맘대로 들어버린 미운 정까지는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워한다.
이런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문화 때문에 전 세계 어떤 조직이론에도 없는 한국 기업에만 존재하는 조직관리 항목이 있다. 바로 '정관리'다. 첫 직장에서 영업관리를 배울 때 '정관리'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정이라는 단어에 따라붙은 관리라는 말이 참 어색했다. 정관리는 영업조직관리 항목으로 목표관리, 인사관리, 재무관리를 포괄하는 조직관리 항목이다. 영업조직에서는 아무리 성과를 잘 내도 조직 내 정 떨어지는 사람 있으면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업조직은 자기 성과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구조여서 영업력이 좋은 사람은 자기 능력을 믿고 얼마든지 동종업계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는 관행이 있다. 그러니까 아무리 능력 있는 영업관리자라도 정관리를 잘못하면 그 조직은 깨지기 마련이다. 부부관계도 정 떨어지면 그만인데 하물며 능력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지는 영업조직에서 정 떨어진 조직은 뻔하다. 영업조직뿐만 아니라 정 많은 한국인들은 어느 조직이든 정관리를 해줘야 한다. 정 떨어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 떨어지기 전에 삐걱거리는 정을 붙이고 쌓인 앙금을 풀어주고 다시 정을 이어주어야 한다. 뒤풀이 회식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요즘 MZ들은 회식이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는데 미운 정 고운 정 이어 붙이려면 싫어도 회식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2차, 3차로 이어지는 술판은 나도 싫다.
이런 한국인의 속 깊은 정도 과하면 오지랖이 된다. 정과 오지랖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오지랖의 원래 뜻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겉옷의 앞자락인 오지랖이 넓으면 이리저리 물건에 닿고 스치게 되니 다른 것에 방해가 된다. 따라서 ‘오지랖이 넓다’란 의미는 어떤 일이든 나서서 간섭하고 참견하는 것을 꼬집어하는 말이다. 오지랖도 정처럼 대상에 대한 관심이고 관계에 대한 애정이다. 오지랖도 정과 같이 바로 역지사지의 마음 즉 ‘남일 같지 않아서’에서 나온다. 그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 마치 내 일과 같은 마음 때문에 오지랖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이 지나쳐서 생기는 일이다. 물론 오지랖이 그냥 성격인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런 사람은 논외로 하자.
한국인의 대표적인 오지랖 중에 하나가 바로 만나자마자 호구조사하는 습성이다. 한때 한국인의 이러한 호구조사 오지랖 습성을 천박하게 생각했었다. 특히 해외여행 중 한국인을 만나면 갑자기 쑥 들어오는 오지랖 호구조사 공격에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과 우리공동체 문화 유전자에 대해 공부하고부터는 조금 생각을 바꾸었다.
이 호구조사 오지랖 습성도 정 많은 한국인들이 우리공동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표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동질감을 찾아 경계를 풀고 빨리 우리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마음, 즉 정이라는 대상에 대한 애정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빨리 우리가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고,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어디 사는지, 직장은 어딘 지에 대해 묻는다. 같은 나이인지, 내가 살던 고향 근처 사람인지, 학교가 같은 지 등 많은 질문 중에 한 개 라도 동질감을 찾으면 즉시 형, 동생, 누나, 언니, 친구, 삼촌, 이모가 되어 급속하게 우리가 된다. 호구조사를 통해 동질감을 찾아 우리가 되어 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장유유서 문화가 있는 한국인들은 호구조사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상대방을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상대에 따라 말을 높여야 할지, 식사라도 같이 하면 숟가락을 내가 먼저 들어야 할지, 술이라도 같이 하면 고개를 돌려야 할지 등 상대에 따라 응대법을 달리해야 한다.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싸가지없는 놈’ ‘버릇없는 놈’이 되지 않으려면 호구조사가 필수인 셈이다. 혹시 처음 만난 한국인이 다짜고짜 호구조사 오지랖을 부리더라도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정 많은 한국인들이 빨리 우리가 되어 친해지고 싶다는 우호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하지만 오지랖을 아무리 우호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무엇이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바로 오지라퍼 대마왕 꼰대들이다. 이들 꼰대들은 한국사회 곳곳에서 출몰하며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 ‘안물안궁(안 물어보았고, 안 궁금하다)’한데 말끝마다 ‘나 때는 말이야’를 남발하며 상대방에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날려 보낸다. 정도 과하면 오지랖이 되고, 오지랖이 도를 넘으면 충조평판 꼰대가 된다. 꼰대 오지라퍼가 많은 세상은 피곤한 세상이다. 아무리 정에서 비롯된 오지랖 문화라 해도 과한 꼰대 오지라퍼들은 사양한다. 너님들 말고도 세상 살아가기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