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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Oct 25. 2024

굿은 GOOD이다.

인생은 한판굿

‘굿은 참 좋은 것이여’

스승인 호남좌도 필봉굿 양순용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 굿은 참 좋은 것이다. 영어로도 ‘good’은 좋다는 뜻이니 동서양 따질 것 없이 굿은 참 좋은 것이다. 초대문화부장관 이어령 선생은 이 굿이라는 말을 부조화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굿이 한국인의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시킨 Good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굿은 Good이다’라는 말은 참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굿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무당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굿 정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일상에서는 이 굿이라는 말을 무당굿보다 더 폭넓은 개념으로 끌어다 쓴다. 사랑굿, 노래굿, 잔치굿과 같이 삶 속으로 들여와 한판 마당 문화와 결합시켰다. 


흔히 농악이라 부르는 풍물굿 안에는 상황별, 과정별로 나눠 세부적인 굿이름이 붙는다. 굿을 시작하기 전에 굿을 준비하는 채굿이 있고, 굿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인사굿이 들어간다. 굿을 치는 장소나 상황에 따라 문굿, 마당굿, 조왕굿, 철룡굿, 샘굿, 곡간굿, 성주굿 등의 이름으로 부르며, 판굿 안에도 길굿, 칠채굿, 호허굿, 풍류굿, 미지기영산굿, 가진영산굿, 다드래기영산굿, 노래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군영놀이굿, 도둑잽이굿, 탈머리굿, 대동굿 등의 작은 굿들이 들어 있다. 이 작은 굿판들이 모여 전체 한마당의 풍물 굿판이 된다. 이는 풍물굿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삶 속에도 상황에 따른 작은 굿판들이 들어 있다. 그 굿판들이 모여 한판 인생이 되는 것이다.


굿은 춤추며 노래하며 신명을 끌어올리는 화합과 통합의 축제다. 굿은 맺힌 것을 풀어 부조화의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은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천도하는 대표적인 전통 굿이다. 이 굿을 본 사람이라면 단번에 위에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진도 씻김굿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와 춤이 따른다. 노래하고 춤추며 망자의 맺힌 삶을 풀어주고 신명을 끌어올린다. 슬픔 속에도 카타르시스가 있으니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그러니 굿은 Good이다.


굿에는 저항정신이 들어 있다. 부조화의 상태를 조화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부조화의 상태를 깨야한다. 부조화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조선후기, 지속된 세도정치로 국가기강이 무너지며 농촌사회 붕괴는 많은 떠돌이 유랑민을 발생시켰다. 이들 중에는 남사당패처럼 풍물이나 탈춤 등을 매개로 삶을 연명해 가던 집단이 생겨났는데 생존의 도구로서 굿을 팔아 연명해야 했다. 떠돌이 유랑의 삶이 좋을 리 없다. 기득권에 대한 원망과 응어리진 마음을 굿 속에 넣어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냈다. ‘한국, 한국인’의 저자 이종선 선생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천성을 ‘정의로움’과 ‘감성적인 면’을 꼽는다. K팝의 근원을 이런 한국인 천성인 감성적인 면에서 찾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문학이나 예술이 발달한 연유는 바른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정의로움’에서 찾았다. 한국인의 천성 속에 들어있던 정의로움이 굿을 통해 풍자와 해학의 저항정신으로 발현된 셈이다.


이러한 굿의 저항정신은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로 동학농민군의 최후결전지 공주우금치전투였다. 우금치가 있는 공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동학농민군에 관한 역사는 늘 관심사였다. 대학시절 풍물 선생님으로부터 우금치전투에서 제일 선두에 섰던 이들이 바로 풍물패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풍물패들은 달랑 악기 하나만 들고 풍물을 울리며 고갯마루를 향해 나아갔고,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져갔다. 하지만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뒤따르던 농민군은 죽은 자의 북을 다시 메고 계속 나아갔다. 최신식 게틀링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 화승총이나 조총, 죽창을 든 동학농민군은 그저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렇게 몰살된 동학농민군의 피가 우금치 고개부터 흘러 공주시내를 관통하는 재민천을 따라 금강까지 붉게 물들였다고 한다. 그 피를 마시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역사 앞에 숙연해진다.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풍물패가 앞장섰다는 사실이 관군의 기록에도 있었다.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오는 저들은 그 어떠한 의리이며 그 어떠한 담략인가. 그들의 행동을 생각함에 뼈가 떨리고 마음이 서늘하다’ (출처: 관군 좌선봉장 이규태의 ‘선봉진 일기’ 중)


우금치 전투에서 앞장섰던 풍물패의 굿은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몸부림이자 저항이었다. 이런 정신이 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굿은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시대를 풍자와 해학을 담은 마당굿이 학생들의 저항의식을 끌어올렸고, 시위의 맨 선두에는 어김없이 풍물패들이 섰다. 지금이야 풍물을 흥겨운 사물놀이 정도로만 알고 있겠지만 80년대 풍물패는 시대에 대한 저항을 온몸으로 표현하던 학생운동의 전위부대였다. 


굿의 유전자를 장착한 한국인들은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화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데 능하다. 독재와 싸운 민주화 운동, 국가재난이나 천재지변에 모여드는 구호손길 등 굿 유전자의 활약은 셀 수 없다. 몇 년 전 시민의 힘으로 비폭력으로 정권을 바꿔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혁명도 한판의 저항과 축제의 굿이었다. 시민들은 폭력 대신 손팻말과 촛불을 들고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며 부조화를 깨기 위해 흥겨운 저항과 축제의 굿판에 참여했다.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는 굿판을 좋아하니 전국 지자체가 벌이는 축제가 수백 개나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굿 정신은 자랑스러운 K-문화 유전자 중 하나다. 한국인에게 굿은 단순한 무당굿이 아니라 춤추고 노래하며 신명으로 맺힌 것을 풀고, 저항으로 부조화를 조화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화합과 통합의 축제 굿이다. 무당굿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K-바람이 더욱 융성하기를 바란다면 K굿 정신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흥겨운 K굿판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굿은 Goo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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