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기질
“산 사람은 살아야지”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전하는 이 짤막한 한 마디 속에 한국인의 강한 생존 메시지가 들어 있다. 한국인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미래를 먼저 보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또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죽음을 맞이한 상주에게 전한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한국인은 어떤 고통과 위기가 닥쳐도 내일을 살아내려는 강력한 생존 유전자를 장착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다. 식민지, 전쟁, 가난, 독재, 국가부도 등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위기는 모두 한국인을 비켜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꿋꿋하다. 살아남은 것이다. 바로 한국인의 강력한 생존 유전자 위기 극복 유전자의 힘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8년 IMF 때 있었던 금 모으기 운동과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123만 자원봉사 행렬 등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런 믿기 어려운 행동들이 바로 한국인의 ‘산사람은 살아야지’ 위기 극복 유전자의 힘이다.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터(Daniel Tudor)는 한국인은 외부로부터 위협이 닥쳐온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하면 놀라울 정도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단결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방어적 국가주의가 주는 효율적인 사회접착제 기능이라고 하였다. 한국인의 위기극복 유전자를 효율적인 사회접착제 기능이라고 부르니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인들은 신기한 종족임은 틀림없다.
한국인의 이러한 위기 극복 유전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살아온 역사 속에 답이 있다. 한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전쟁을 겪어야 했고, 시시때때로 가뭄, 홍수, 태풍 등 천재지변과 창궐하는 역병에 생존을 위협당했다. 근현대사만 돌아보아도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 6.25 전쟁과 전후 폐허 속 빈곤 등 피, 땀,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시대였다. 지금까지도 지구상에 거의 유일한 분단국가를 유지하며 철 지난 냉전이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고통과 시련을 달고 늘 생존을 위협받아가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시련과 위기를 겪을수록 더욱 강해졌다. 시련과 위기를 자양분으로 썼다. 칸의 감독 박찬욱은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극단적인 경험들이 우리 유전자에 만들어 놓은 어떤 드라마적인,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킨 것 같다.’고 말하였다. 시련과 고통의 근현대사가 지금의 K콘텐츠 자양분이 되었다는 말이다.
축복은 시련과 고통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영웅은 고난과 시련 극복의 영웅서사를 가지고 있다. 고난과 역경은 성장을 동반한다. 한국인들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더 강해지는 법을 배워 더 멀리 뛰어나갈 힘을 얻었다. 바로 위기 극복 유전자다.
‘한때 부자였다. 부모님 사업이 망해 한순간에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수돗물로 배를 채워야 했다.’
‘잘 나가던 시절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 인생관이 달라졌다.’
성공담에 자주 등장하는 서사는 늘 이런 식이다.
한국인의 위기 극복 유전자는 잦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겪으며 더 강화되었다. 척박한 환경 속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한국인은 공동체가 무너지면 자신도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강하게 결속하여 대처해야 공동체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위기가 닥치면 자연스럽게 위기 극복 유전자가 작동되었다. 그러니 수많은 의병들이 있었고, 이름 없이 죽어간 독립군이 있었으며, IMF 금 모으기, 서해기름유출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다니엘 튜터(Daniel Tudor)씨 말대로 효율적인 사회접착제 기능이 작동한 것이다.
‘파이팅!’
한국인의 위기 극복 유전자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말 중에 하나가 바로 파이팅이다. 영어 ‘Fighting!’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의 기질과 결합하여 ‘힘내자’ ‘아자’와 같은 의미로 변한 독특한 외래어다. 이 ‘파이팅’이라는 말은 한국인의 강한 생존 메시지인 ‘산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과 괘를 같이한다. 미래를 먼저 보는 한국인들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 ‘파이팅’을 외친다. 오늘을 살아내야 하고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사람은 살아야지’ ‘파이팅’이다.
한국인은 정말 파이팅을 좋아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이 말을 자주 외쳐 대는지 처음 접하는 외국인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이 ‘파이팅’ 소리가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본래 의미대로라면 싸우자는 말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인들의 일상어가 된 이 ‘파이팅’은 2021년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 원래 영어였지만 ‘힘내자’ ‘아자’라는 의미의 한국어로 등록되었다. 그러니 이제 외국인을 만나도 당당하게 파이팅을 외쳐도 된다.
힘든 시절이다. 망연자실 낙담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던져주는 ‘파이팅’ 한 마디가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 오늘 하루 그냥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