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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 박사 Dec 29. 2021

결단의 시기

사랑하던 회사와의 이별

바쁘다 바빠

확실히 2학년 2학기가 되니 박사과정 과제의 강도와 연구에 대한 압박이 슬슬 시작됐다. 업무적으로도 너무 바빴다.


회사의 핵심인재 트레이닝 프로그램 차원에서 2 1조로 해외 호텔 벤치마킹을 하고 업무에 적용시키는 프로젝트참여 중이었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했던 구매팀의 동갑내기 친구와 중국 북경과 상해의 호텔 20 곳을 돌며 우리 호텔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임원진에 보고하는 업무였다.


회사 리모델링을 하면서 새로 오픈할 영업장과 연회장에서 사용할 기물 및 장식, 유니폼까지 일일이 선택해야 하는 것도 큰 일이었다. 대다수의 식기 및 기물은 한국에 마련된 쇼룸에서 비교해볼 수 있었지만, 일식당 식기는 카탈로그로만 보고 선정해야 해서 무리가 있었다. 이에 일식기를 선정하기 위해 식음담당 이사, 일식당 셰프, 구매팀 직원과 함께 오사카에 있는 그릇 공장까지 다녀왔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 동안 새로 오픈할 일식당 콘셉트에 맞는 식기와 컵 등을 고르는 작업이었다. 힘들었지만, 너무나 즐거웠던 시간.


또 리노베이션 완성을 앞두고 각 팀의 팀장 및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호텔 콘셉트 교육,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브랜드 정체성 교육,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두 개의 호텔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교육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다짐하고 상상했던 것은 과정이 끝날 때까지 이 회사에 다니면서 두 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2년간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것도 문제였고, 이대로 가다간 박사 과정 프로그램을 중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파일럿 프로젝트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연구 주제에 대한 파일럿 프로젝트(Pilot project)를 진행해야 했다. 이 내용을 2월에 영국에 방문했을 때 문헌 연구 때처럼 발표하고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1월까지 호텔 오픈 준비로  바빴던 나는 파일럿 프로젝트는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본 연구에 앞서 모의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 연구 설계 시에 생각지 못한 문제점이 도출되기도 하고 추가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 발생하기도 한다. 발견한 문제점은 수정하고 추가해야 할 부분은 해당 문헌을 검토한 후 본 연구 설계 단계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



조건부 연장

MBS(맨체스터 경영대학원)의 DBA과정은 회사 업무를 핑계로 수업을 빠지거나 과제를 하지 못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결단의 시기가 온 것이다. 회사냐 공부냐. 회사 차원에서는 브랜드 전략이 잘 자리 잡고 있었고, 직원들도 브랜드 전략을 이해하고 내재화하고 있었다. 우리 팀에도 몇 개월 전부터 인테리어 전문가가 입사해서 자기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내가 빠져도 내 업무는 이제 팀장이 이어서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 개인적으로도 브랜드 전략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잘했으니 이제는 내 연구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일단 파일럿 프로젝트 발표를 미룰 수 있는 지의 여부를 묻기 위해 프로그램 디렉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때, DBA프로그램에 더 집중하기 위해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했다. 퇴사까지 결심하고 프로그램에 몰입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잘 전달됐다. 그리고 5월 중에 온라인으로 지도교수와 프로젝트 디렉터에게 파일럿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팀장에게 먼저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 팀장은 꼭 퇴사를 해야 하는 것이냐며 공부 때문이라면 6개월-1년 정도 무급 휴가를 내는 것은 어떠냐고 했다. 고마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무급 휴가를 다녀오면 기존에 있던 부서로 복귀가 불가능했다. 복귀할 시기에 공석이 있는 부서로 배정되는 방식이었고, 그런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시 나의 마음 상태는 여러 모로 지쳐 있었기에 회사에 어떤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회사에 몸담고 있을 동안 물심양면 서포트를 해준 대표이사에게도 퇴사 소식을 알려야 했다. 대표는 내가 팀장 자리를 고사할 때부터 '언젠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겠구나!'를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2주간 북경과 상해의 20여 개의 호텔 벤치마킹하러 가게 됐을 때부터 그는 "이렇게 교육시켰는데 퇴사하면 출장비 받아낼 거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했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내가 퇴사 이야기를 하자 예감하고 있었다는 듯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또 그 이야기를 했다. 연구와 박사 논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길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그간 이 회사에서 6년간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퇴사하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이 회사는 정말 내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많은 경험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열정적으로 일했던 곳이고 내가 사랑했던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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