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날씨가 꽤 추웠던 크리스마스이브, 오래된 주택들이 가득한 골목길의 연두 대문을 열고 생각다방 산책극장(이후로는 다방이라 칭함)에 들어섰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실내의 보온을 위해 출입문 뒤로도 비닐이 드리워져 있었다. 약간은 어두운 공간 안에 초가 반짝이고 있었을 것이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낯선 이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어린 시절 교회당 옆에 작은 교육관에 모여 밤새 이야기를 하며 놀았던 시간을 떠올리게도 했다. 그 후로 뜸하게 혼자 있고 싶다거나 공연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들르고는 했다. 그 장소도 어느새 사라지고 예전의 다방 자리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버렸다. 이렇게 사라진 장소들은 무수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추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장소를 추억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무엇이라도 내 삶에서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언급했던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특정한 장소를 방문해보기도 하면서 삶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꽤 귀찮아하고 피곤해 한다. 최소한 만나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실패하는 만남도 꽤 많다. 그럼에도 그런 만남의 자리에서 팔랑귀 소유자인 나는 유용한 정보들을 얻어 돌아오고는 한다.
억지스런 개연성을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다방 친구들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것은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꽤 긴 기간동안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하는 순례길에 도전하기는 마음처럼 실행이 어려웠다. 견고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면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지치기 마련이다. 마무리나 끝맺음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나로서는 순례길을 완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800km가 넘는 길은 100km로 줄였고, 무거운 배낭은 짐 서비스로 가볍게 했으며, 기간도 닷새로 줄여서 맛보기 걷기를 하고 돌아왔다. 한 달 넘게 800km 이상을 걷고 온 이들에 비교하면 부족하기도 하고 반칙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혼자 떠나는 두 번째 여행이었다. 기간은 열흘 정도로 하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출발하기 전에도 평소에 운동량이 많지 않아 하루에 20여 km를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마음이 내킬 때 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는 했는데 그것마저 부족한 느낌이었다. 낯선 장소에 덩그러니 놓여질 두려움에 떠나기 전 며칠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막상 길 위에 오르니 비행기도 시간 맞추어 잘 타고 버스도 감으로 잘 타고 길도 구글앱의 도움을 받아 그럭저럭 잘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순례길 위에서는 노란 화살표의 친절한 안내로 길을 잃을 수가 없었다.
마드리드를 둘러싼 황량한 풍경을 뒤로하고 촉촉하고 싱그러운 갈리시아 지방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내릴 때부터 상큼한 공기가 반겨주었다. 차를 타고 사리아까지 이동하면서 기다랗게 자란 유칼립투스와 떡갈나무 숲이 이어졌다. 도로 위로 순례자들이 부지런히 걷고 있기도 했다. 이 길을 닷새 동안 걸어야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사리아의 숙소에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가 걸어갈 방향을 한 번 더 짚어보았다.
갈리시아 지방은 해가 아침 여덟 시는 되어야 떠올랐고 고도가 높은 산간에서는 그마저 아침 안개로 점심 무렵에야 겨우 해를 볼 수 있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많은 순례자들이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새벽에 출발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침안개를 뚫고 사리아의 구시가를 빠져 나갔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걷고 있었고 화살표만 따라 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길게 이어진 숲길과 들판, 농장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어쩔 줄 몰라 하며 힘들게 걸었다. 길 위에는 카페나 기념품 가게들이 있는데 그곳에 잠시 들러 쉬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면 된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카페에 들르면 물건을 사야한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사용하기가 미안했다. 처음으로 화장실이 가고 싶었을 때는 카페에 용감히 들어가 볼 일만 보고 나왔다. 두 번째는 첫 번째처럼 용감하게 가지를 못하고 자연을 이용하다가 그만 급한 마음에 발을 헛디뎌 드러난 발목과 다리를 긁히고 이름 모를 벌레에게도 쏘여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길 위에서 첫째 날 배운 교훈은 용감하게 화장실을 이용하여 편하게 걷는 것이었다.
둘째 날은 첫째 날의 교훈을 거울삼아 카페나 바가 보이면 화장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훨씬 걷기가 수월하였다. 도로변을 걷는 코스가 많아 첫째 날보다 감흥은 덜 한 하루였다.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발목과 허벅지 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화장실만 가고는 계속 걷는 강행군 탓이었다. 중간에 풍경도 보면서 잠시 쉬어가야 오랜만에 걷는 나의 몸도 적응할 텐데 말이다. 둘째 날에서야 겨우 먼 길을 걸을 때는 쉬어가야 함을 깨달았다.
셋째 날은 카페를 만날 때마다 화장실도 가고 잠시 쉬어가면서 일기장을 끼적이기 시작했다. 화장실만 이용하기 미안해서 오렌지 쥬스, 커피, 맥주 등 마시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사먹기도 했다. 간혹 지나가는 이들의 ‘올라’, ‘부엔 까미노’와 같은 인사말에 답하는 것을 빼고는 거의 묵언수행에 가까운 길이었다. 말을 하지 않다 보니 주변의 풍경에 눈길을 주게 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발걸음에만 집중하게 되는 길이었다. 혹은 미묘한 통증들을 느끼며 몸에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길게 뻗은 길 위에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가 흔들릴 때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그를 만난 것은 그 때였다. 혼자 외롭게 걷고 있는 나에게 좋은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의 기착지였던 멜리데에 도착해서 뽈뽀를 안주삼아 점심을 먹었다. 그는 문어가 괴물같이 생겨서 안 먹는다고 했다. 훌륭한 문어 안주에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나혼자 독차지한 뽈뽀의 값을 치루고 싶었는데 기어이 그는 나에게 점심을 사주어 버렸다. 그러고는 내가 가야할 아르수아까지 함께 걸었다. 닷새 중에 가장 많이 걸었던 이날 동행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지만 몸에는 무리였던지 아르수아에 도착해 그와 헤어질 때는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조차 못했다. 내 몸의 소리에 응답한다면 나는 그날 오후 잘 쉬었어야 했고 내 마음의 소리에 응답한다면 그와 맛난 저녁을 먹었어야 했다. 전자를 선택했지만 그 이후로 후회가 계속 밀려들었다. 낯선 이에게 점심을 얻어먹었으면 길 위에서 갚고 왔어야 했는데 하면서 말이다. 셋째 날은 길 위에서든 사는 동안이든 후회는 적게 하자고 다짐했다.
넷째 날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여유롭게 카페에 들를 줄도 알게 되었고, 커피를 마시면서 풍경도 보고 일기를 쓰며 쉬어갈 줄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천천히 꾸준히 걷는 것에 대한 노하우를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걸으면서 터득한 것을 겨우 넷째 날에서야 균형을 맞추며 실행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는 잘하기는 어렵고 시도 끝에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이 삶일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터득한 것을 닷새보다 조금 더 걸었다면 완주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셋째 날 동행이 있을 때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풍경들이 기억에 남지 않았다. 넷째 날은 혼자서 고요히 걸으며 풍경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즐거운 대화와 아름다운 풍경이 공존하지는 못했다.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삶에서도 선택한 것에 주의를 조금 더 기울이고 놓치게 되는 것들은 잘 보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은 일찍 일어나 휴대폰의 손전등에 의지해서 어둑한 길을 걸어 나갔다. 주변에 같이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있어서 새벽의 어둠을 이길 수 있었다. 평소라면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멀찍이 떨어져서 걸었겠지만 어둠이 두려워서 앞서가는 순례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는 바짝 붙어 걸었다. 혼자였다면 무서웠을 새벽길 위에 누군가가 걷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대성당을 바라보며 광장에 앉아 시간을 보내었다. 겨우 100여 km를 걸어서인지 감동이 밀려들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그와 함께 동행 해 준 신발을 광장 바닥에 벗어 두고는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고국의 국기를 양손에 잡고 하늘 위로 펼치고는 사진을 찍기도 했다. 대성당의 실루엣을 무의미하게 계속 찍어보았지만 도착하고 나서야 이 길을 왜 걸었는지 묻기 시작했다. 800km를 걸어온 뉴질랜드 순례자에게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이제 ‘출발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걸어왔지만 도착이 아니라 출발이라는 그녀의 말이 조금 다가왔다. 아마도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매 순간 출발해야 할 것이다.
다방이라는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 곳을 추억하는 친구들에게 남아 살아간다. 다방을 추억하는 글은 더웠던 여름에 길 위에서 만난 자잘한 것들로 대신하려고 한다. 친구들이 터한 모든 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걸어가되 후회는 조금 덜했으면 한다. 살아갈 날들이 다방의 모토인 ‘놀이’처럼 재미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