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희
공간이 사라지고 나서도 각자의 마음 속에서 꽤나 긴 애도의 시간이 있었다.‘애도를 멈추는 자장가가 되고 싶다’(김소연)던 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큰 슬픔과 애도가 이어지는 날들이 우리의 세계에서 반복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애도를 끝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슬픔들에 뒤섞여 잊어가기로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애도는 아닌 듯하다. 즐거운 기억이고, 추억이고, 그런 추억들이 우리를 어떻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오랜만에 잠시 접어 두었던 블로그의 글들을 꺼내보며, 드문드문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흔적들을 발견하였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문을 닫고, 몇 달이 지난 후 우연히 방문한 그곳은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골목길조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폐허가 된 공사장에서 혹시라도 건져 올릴 만한 것이 없을까, 그 공간의 흔적을 찾아 거닐었던 기분으로, 이곳 저곳에 부치지 못했던 편지들을 끄집어낸다. 어떤 말들을 전하고 싶었을까.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3주년에 부쳐서는 이런 말들이 남아 있었다. 바람 냄새 묻어나는 엽서 한 장, 콘크리트 사이 들어온 햇살, 정전 때 켜 둔 촛불, 웃음소리. 기침, 한숨, 콧물 훌쩍이는 소리들을 붙여놓은 릴테이프(정혜윤)처럼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시간들. 문짝을 엎어놓은 환대의 테이블 아니 환대의 대문. 손님으로 가서 주인이 된 사람들, 관객이었다가 무대에 오른 사람들. 끊임없이 채워졌다 비워지고 채우다가 비우는 사이에 그런 일들은 일어나고.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수많은 설거지감을 남겼다. 그리고 아직도 못다 한 설거지가 가슴에 남아 있다고 나는 이야기했었다.
그런 기억은 “정전과 단수의 생다산극”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하나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철거 직전의 낡은 주택이었기에 정전이 되거나 물이 나오지 않아 고생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고, 어떤 한 순간에는 그곳에 나도 있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우연처럼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앉아 있었고, 정전이 되어 촛불을 켜고, 냉장고에 미지근해진 맥주를 두고 갓 사온 신선한 맥주를 마시며 바람 소리를 들었다. 1층에서 누전 때문에 차단했는지 몰라도 물마저 나오지 않던 날이었다. 정전과 단수의 생다산극에서 나는 짐짓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어둠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신기해 하기도 하면서 손을 더듬어 촛불을 찾아헤매던 추억을 끄집어 내며 즐거워하기도 하였지만, 냉장고에 든 음식물이 노랗게 부패해가는 것을 모른 체 하며, 방 안의 모든 초를 모아 불을 켜는 지기들의 노랗게 뜨는 마음을 모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인가는, 온전히 촛불에만 의지한 채 수다로 시간을 이어가기도 했었다. 초를 켜 놓고 우리들은 타로를 보며, 끝나지 않는 질문들로 무궁무진해지기도 했고, 음악을 들으며, 음악소리에 촛불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작은 다락방에서 빼곡히 들어앉아 이야기들을 나눌 때에는 박수를 치고 웃으며 “오늘 참 재미있다”는 말들이 들려오기도 했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훨씬 많은 일들이, 만남이, 이야기가, 노래가, 사건들이 그곳에서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아무런 의미나 목적을 찾지 않았던 시간들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남아있는지는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맨 처음 생각다방 산책극장을 찾았던 날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건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천장에 관한 기억인데, 나는 그 기억을 실패들의 천장이라고 이름 붙였었다.
히요와 이내가 함께 일구기 시작한 그 장소를 향해 가던 날이 있었다. 못골의 낯선 골목을 안내하며 히요는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개라고 하였다. 70년대에는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주택이었다는 그곳은, 지금은(그때는) 부동산에서도 내놓기를 꺼려하는 폐가였다고 하는데, 히요와 이내와 그 친구들은 그 마을이 재개발되기까지 3년 동안 그 장소에서 꽃을 피워 볼 요량인게다, 라고 나는 그때를 기록하고 있다.
담쟁이로 온통 뒤덮인 입구에서 나는 이미 허물어진 이전에 공부하던 장소를 추억하면서 발걸음이 느려졌다. 내가 공부하던 그 낡은 주택은 이미 허물어지고 4층짜리 원룸으로 탈바꿈했는데, 나는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푸르른 담쟁이 벽 아래에서 영원히 오지 않을 담벼락의 미래를 상상했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천장은 조각천들을 이어붙인 것이었다. 나는 한창 조각천을 이어붙이고 있는 히요를 잠깐 도왔다. 히요가 밑에서 천을 골라 풀을 발라주면,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내가 천장에다 천을 이어붙이는 것이었다. 처음 해 보는 작업이었고, 천의 재질도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저마다 다른 천조각 옆에 또다른 천조각을 붙이는게 망설여졌지만 나중에는 그림을 그리듯 손가락이 먼저 나갔다. 그건 밑에서 천을 골라주는 히요가 의도했던 배치와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어서, 그것도 재미있다며 우리들을 조근거렸다.
서툰 손길은 군데군데 빈틈을 남기고, 의도대로 가 닿지 않는 손길은 전혀 다른 결과물들을 남겨, 하나를 붙일 때마다,‘아 이게 아닌데’라거나,‘이상한데!’라거나,‘앗, 실패다’따위의 말들을 내뱉으며, 안타까워하였는데, 정작 멀리서 바라보던 히요는 제법 괜찮은 구성이 나왔다고 평을 해 주었다. 가까이에서, 하나하나 겪어 나가면서 만난 실패들도, 멀리서 보기에는 하나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구나, 하고 그때 생각했다. 하나의 실패가 아닌 여러 개의 실패만이 만들 수 있는 그림이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실패들도, 모여 있으니, 아름답구나’라고.
그때의 계절이 봄이 아니었더라도 그날은 봄날이었던가. 실수투성이의 여름과 바람 한 조각에도 행복해지던 가을을 지나, 두꺼운 비닐에 비친 불빛과 점차로 허물어져가는 시간과 공간으로 남아 있는 그곳. 그곳을 이제 모여 있었던 실패들이라 불러도 괜찮다면, 그 실패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나를 살게 했다고 고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