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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성 Oct 22. 2023

30년 신춘문예 소설당선 도전기

13 -보스를 아십니까: 또 한 번의 신춘문예 도전

   2022년 전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 목소리를 가지고 맘껏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동안 생각의 저장고에 넣어두었던 각종 소재들을 끄집어내고 집필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이 다 지나가도록 어디에서도 청탁하나 없었다. 전국의 서점에 2022 신춘문예당선소설집이 깔리고 문청과 독자들을 비롯해 출판사관계자들까지도 유망한 작가가 있지 않나 하고 다 읽어 보았을 텐데 나의 작품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소위 말하는 중앙지에 당선한 작가들의 경우는 젊은 작가나 주목할만한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획출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다.

   실망도 잠시, 나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였다. 내가 패기만만한 청년도 아니고, 지천명을 넘긴 중년의 직장인으로서 작은 지방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했다 해서 나의 작품을 어서 읽고 싶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을 알만한 나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그동안 썼던 작품과 새로운 작품 둘을 골라 중앙지와 지방지에 응모해 보기로 했다. 모집요강에 기존당선자는 응모할 수 없는 신문사는 빼고 지방지 중에서는 한 번이라도 최종심에 올랐던 신문사도 전부 제외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보스를 아십니까]라는 작품이 전남매일의 최종심을 통과하고 2022년에 이어 2023년에 당선되었다. 중앙지에 응모했던 작품은 예심도 통과하지 못했는지 최종심에 언급되지 않았다. 대개 중앙지 당선작을 보면 젊은 작가들이 낙점되었다. 심사위원도 젊은 소설가중심으로  구성되니 소위 말하는 현 시류를 나의 작품으로는 뚫고 나갈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소설은 다양성의 세상이다. 젊은이들에게 소구 하는 작품이 인정받듯이 긴 세월을 인생의 여러 단면을 소설로 써온 중년 신인들의 작품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스를 아십니까]는 구두가 발산하는 광(光)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직업상 두세 켤레의 구두를 준비해 놓고 번갈아가며 싣는다. 광나는 구두를 신고 나설 때는 기분이 좋다. 우리 삶의 여정은 어쩌면 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 구두를 정성스럽게 닦아주던 한 젊은 구둣방 청년을 만난 후 이 소설이 구상되었다. 소설을 구상할 즈음 우리나라 대기업의 후계구도와 관련한 뉴스들이 많이 나왔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망 후 그룹 상속이 이어졌다. 세상이 시끄러웠다. 나는 물려준다는 것과 물려받는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첫 제목은 [후계자에 대하여]였다.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작품은 최종심에 두 번 정도 올라갔었다. 나는 문장을 한 번 더 다듬고 주제를 강화하고, 구둣방을 물려준 보스라는 인물을 새롭게 창출했다. 제목도 [보스를 아십니까]로 바꿔 응모했다.

  전남매일은 공교롭게 내가 2022년에 당선된 전라매일과 이름이 유사했다. 비교적 언론사로서는 광주에서 후발주자에 속했다. 다만 최근 대주주가 자본이 탄탄한 건설회사인 중흥그룹으로 바뀌면서 신춘문예공모를 시작한 신문이었다. 나는 전국의 신문사가 신춘문예공모를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문화의 근간은 한글을 통한 문학작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유수의 언론사들이 300~500만 원 정도의 시상금을 준비하여 1년에 한 번 그 문화를 추동할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장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내가 등단한 전라매일과 전남매일이 앞으로도 계속 신춘문예공모사업을 이어가길 바라고 응원할 것이다.

   

  심사를 맡았던 유만상 소설가의 심사평을 보면서 나는 내 작품이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선 통보를 듣고 이번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년 연속 당선은 나의 소설 쓰기가 단순한 운으로 치부되거나 단발로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줬다. 3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을 소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삶이니 아직 정신이 총총할 때, 삶의 이면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나이 일 때 소설 쓰기를 더 치열하게 하라는 충고처럼 다가왔다.

 

  “마지막 당선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특별히 신박한 소재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학습 수련이 느껴지는 데다, 단편 미학의 압축된 밀도와 더불어 구두를 닦는 한 부스 노동자를 통해 수련 노동의 가치 혹은 장인정신의 계승 환담을 해학적 반전까지 동원시켜 코믹하게 버무려낸 [보스를 아십니까]였다. 우선 서사의 미적 활용과 주제 구현 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작품의 주제로 ‘닦는다’는 의미를 ‘빛을 향한 소망’으로 연결 지어보면서 당선자에겐 축하를, 다른 모든 응모자에겐 격려로 인사를 전한다.”


   당선발표 후 나는 심사위원인 유만상 소설가께 전화를 드렸다. 전화 속에서 선생님은 늦지 않았으니 정말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 주셨다. 54세의 나이가 결코 늦지 않았다고 거듭거듭 말씀해 주셨다. 신문에 실린 나의 당선소감을 보고 한 번 더 전화를 주셨는데 당선소감은 이렇다.

 

   “ 은은하게 광이 난 구두를 신고 나서면 기분이 좋았다. 증권맨이라는 직업상 구두로 말하는 삶을 살았다. 고객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구두는 항상 잘 닦여 있어야 했다. 하나로는 부족해 두세 개의 구두를 번갈아 신었다. 구두굽이 닳아 한 켤레의 구두를 새로 살 때쯤 나는 신입사원에서 주임으로 주임에서 대리로 그리고 회사원의 최고직급인 부장까지 승진했다. 그렇게 세월 속에서 나는 구두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구두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내겐 광이 생명인데, 네게는 무엇이 생명이야?”     

  내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중년으로 성장한 과정은 삶의 광을 내는 여정이었다. 광은 남에게 보이는 나의 노력이었지만 한편으론 곶감의 분과 같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무엇이길 바랐다. 그런 생각이 한 편의 소설이 되었고, 나는 이 소설에서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으로서 광을 말하고 싶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광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가치 있을 때 더욱 빛나리라 믿는다.”


  다음은 유만상 선생님의 말씀이다.

  “이제 구두가 작가에게 물었던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할 차례입니다. 유산으로서의 광을 위해 빛을 반사하고 확장시킬 수 있는 어둠의 배경, 때론 아주 벅찬 그 무게까지를 감당하겠다는 각오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제 짐을 지고 일어섰으니 걸어 나가야지요. 당당하고 힘차게 걸으십시오. 어둠에서 튕겨져 나온 그 빛이 반드시 그대의 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의 길을 밝혀줄 빛이 소설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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