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Oct 25. 2024

여덟 번째 편지 - 2023년 12월 21일

사람, 사랑

다정한 OO에게,


OO 안녕? 이번 주 날씨가 정말 비정한 것 같아. 이런 강추위라니. 살을 에는 듯한 추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날이야.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힘이 쭉 빠지더라. 아침에 아이들 등원하는 길도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어.


몸은 힘든데 이상하게 문득 어릴 때 추운 겨울날 이불속에서 호빵이랑 귤 먹으면서 만화영화 보던 기억이 나더라. 모든 게 하얗고 그늘 한 점 없던 시절. 우리 아이들에게도 먼 훗날 눈 오는 날에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눈사람 만들기에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집에서 더욱 영혼을 담아 열심히 놀아주고 있지. 아이들은 추운 날 더 몸을 웅크리게 되는 건지 매일 일찍 잠들고 푹 늦잠까지 자고 있어.



다음 주가 벌써 올해의 마지막 주야. 시간 참 빠르게 흘렀다.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돌아보고, 자기를 조금 책망하고 조금은 다독이며 내년 계획을 세우잖아. OO도 새해 계획을 세우는 편이야?


최근에 독서 서비스 <플라이북>의 요청으로 아티클을 작성했어. 처음 외부 기고문을 써 본 건데, 정해진 주제와 분량에 맞춰 글 한편 완성하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 요청받은 주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용기’였어. 요청에 맞춰서 내가 퇴사와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된 과정, 마음가짐, 그리고 도전하는 구독자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글을 썼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나를 잘 아는 게 중요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꿈꾸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올해에 읽은 책중에 좋은 책도 추천해 달라고 해서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모든 삶은 흐른다』 이 세 권을 추천하였어.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동안 얼마나 목표를 세우고 점검하는 사람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어. 사실 그동안 목표 설정이나 회고를 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 연말도 연초도, 그저 똑같이 소중한 하루로 느꼈거든. 특별할 거 없이,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면 되는 날들. 뭔가 절박함이 부족했던 걸까? 이번 연말에도 역시 구체적인 새해 계획은 세우지 않고 이야기의 큰 흐름만 그려보고 있어. 얼마 전 나름대로 큰 결심을 했거든. 바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고.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어느덧 내 삶에 깊게 자리 잡아서 흔들릴 일이 없을 것 같아. 또, 회사를 다니며 어떤 상황에 놓여도 내 삶을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만큼 그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몸과 마음이 많이 건강해졌고, 일과 회사,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기준과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어. 


마지막으로, 문득 내가 이기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내 꿈에 도전하지 않고 계속 회사에 다녔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더 예쁜 옷도 사주고 더 재밌는 장난감도 사줬을 텐데. 하하.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불안하거나 한 건 아니야. 아이들에게 옷과 장난감보다 더 중요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주었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올 한 해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어. 나만큼 사랑받는 아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빠를 좋아하기도 해. 하하.



내 인생 이야기의 흐름을 볼 때 육아휴직부터 시작된 한 챕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어. 퇴직 후 1년은 내 지나온 항로를 돌아보며 배 구석구석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항해에 나가는 시간이었다고 믿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려 해. 다시 회사를 다니는 시기는 내년 봄에서 여름 정도가 좋을 것 같아. 휴직, 퇴직할 때 연결점이 있었던 외국계 기업이나 스타트업 지원 업계 쪽을 다시 두드려 보려고. 그동안 공적인 분야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이런 분야의 회사 생활은 많은 경험과 글감을 만들어 줄 거야.


이런 계획을 세우다가 <엮은이 닷노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어. 연재를 시작할 때는 언제 어떻게 연재를 마무리할지 정하지 못했어. 어떤 방식이 좋을지, 내가 글을 얼마나 꾸준히 쓸 수 있을지, 과연 몇 명이 구독해 줄지 등 모든 게 불투명했거든. 몇 번 편지를 보내면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었어. 이 편지를 쓰는 일이 생각보다 엄청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고, 엮은이들에게 계속 받아 보기를 강요하는 느낌도 조금 불편해서.


많은 고민 끝에 내 삶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맞춰 <엮은이 닷노트> 첫 번째 이야기도 마무리하려고 해. 해가 바뀐 후 세 번째 편지가 될 12호(내년 1월 18일)까지만 보내고, 두 달 정도 휴식 시간을 보내려고 해. 쉬는 기간 동안에는 본격적인 글쓰기 연습과 취직 준비를 동시에 힘써보려고 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단편소설 집필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무언가 내 안에서 계속 소설을 써야 한다는 의지가 끓어 올라. 두 번째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쓸지도 생각해 보려고. 지금처럼 편지글이 될지, 에세이가 될지, 소설이 될지.



아직 작별 인사를 할 때는 아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동안 <엮은이 닷노트>를 읽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어떻게 하면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할까 생각해 보다가, 우리 엮은이 중 한 명인 OO가 2023년을 돌아보며 인스타에 올린 글이 너무 좋아서 나누고 싶어.


“2023년 키워드를 요약하자면 딱 두 가지인데, 사람 그리고 사랑이다.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건 단연코 사람이었다.

(…)

'一人一宇宙,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매력적인 우주를 가진 사람들은 어찌나 그렇게 많은 건지. 나에겐 없는 우주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살면서 만들어온 그들만의 우주를 보여주며 다정한 말로 툭- 내뱉곤 했다. 별거 아니야. 너도 할 수 있어.

(…)

난 그 모든 것이 사랑으로 느껴졌다. 한 사람이 건네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기에. 우리는 가끔 착각한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나를 믿어주는 딱 한 사람, 1인분의 사랑이다. 그 1인분의 사랑만 있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OO의 말처럼, 나도 내 글을 다정하게 읽어 준 OO 덕분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어. 소중한 인연, 고마운 마음 오래오래 간직할게.


OO의 2023년도 충분한 사람과 사랑이 가득했던 한 해였기를 바라.

날이 많이 추운데 건강 조심하고, 다가오는 연말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어.


다음 주에 또 편지 보낼게.


오늘도 내일도 다정한 하루 보내기를.

                     

이전 07화 일곱 번째 편지 - 2023년 12월 14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