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Oct 25. 2024

아홉 번째 편지 - 2023년 12월 28일

회고

다정한 OO에게,


OO 안녕? 2023년의 마지막 주 어떻게 보내고 있어? 따뜻한 마음으로 소중한 사람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


난 일주일째 독한 감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어. 증세가 나타난 지는 거의 열흘쯤 되었어. 평소에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코감기만 살짝 걸렸다가 바로 낫는 편인데, 이번에는 좀 이상하네. 소문대로 코로나19 이후로 감기 바이러스가 강력해진 건지, 운동을 멀리한 죄로 내 몸이 허약해진 건지, 내년 일이 잘 풀리려고 액땜하는 건지 모르겠어 정말. 크리스마스 날 문을 연 병원에 찾아가 수액을 맞고 왔을 정도로 연휴에는 꽤 심하게 앓았어.



참, 이상한 일도 있었어. 지난주 올린 브런치 연재글 <아빠는 퇴직, 엄마는 복직> 3화가 운 좋게 바이럴이 되었어. 에디터 픽에 선정되어 브런치 메인과 다음 메인에 노출된 건데, 일주일 동안 총 조회수가 거의 6천까지 쌓였어.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어떤 기준인지 몰라도 선정되어서 감사했고, 조회수가 몇백 단위로 쑥쑥 오르니까 기분이 좋긴 좋았어. 한편 하필 왜 이 글일까 그렇게 잘 쓴 글은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 글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본다는 게 좀 무서웠어. 다음 글을 쓰는 게 부담되기도 했고. 괜히 독자들이 의식되니까 이런저런 핑계로 글을 쓰지 않게 되더라.


하필 몸이 안 좋아서 도저히 미리 글을 쓰지 못하고 연재일 당일에 겨우겨우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어. 다행히 개인적으로 올 한 해 가장 만족하는 글 한편을 완성했지. 근데, 아직 조회수가 50도 안 나오고 있어. 하하. 도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게 중요한 거지, 조회수가 중요한 건 아닌데. 이 상황이 좀 웃기기도 했고, 아직도 조금 허탈한 마음이야.



일주일을 이렇게 보내며 책도 거의 읽지 못하고 다른 글은 하나도 쓰지 못하고 휴식에 집중했어. 덕분에 차분하게 올 한 해 내 인생 흐름을 계속 돌아보았어.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연말에 회고를 한 적이 없는데, 감기에게 고맙네.


내가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그리고 한 해 동안 어떤 기억할 만한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볼게!


나의 2023년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퇴사, 전환, 도전이야.


1월부터 4월까지, 퇴사와 이직이 가장 큰 키워드였어. 


작년 11월에 휴직하면서, 11월, 12월 두 달 동안은 스타트업 지원 업계 이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벤처캐피털 교육도 들었어. 그 분야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1월 10일 점심쯤, 즉흥적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그날 밤 기차를 타고 강릉으로 떠났어. 그리고 1월 11일 아침, 바닷가에서 마지막으로 퇴사를 결심했지. 작년 말까지 이직과 도전이 비슷한 크기로 싸우고 있었다고 하면, 이날부터 도전에 대한 마음이 훨씬 더 커졌어.


2월에는 이직 논의를 하던 두 회사 관계자 분들과 몇 번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어. 한편 퇴사 시기를 언제로 정할지 아내와 계속 고민했고. 그리고 3월 2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3월 중순에 회사 인사처와 면담을 갖고 캠퍼스를 돌며 동료 선후배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어. 며칠 뒤, 이직 후보 회사 중 한 곳의 이사님과 커피챗을 가졌고 그분을 뵙는 건 그날이 마지막이었어. 내 마음속에서 단순한 이직보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4월부터 7월까지는 전환과 탐색의 시간이었어. 이직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 두고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탐색하기 시작했지. 이때 잠시 바라본 길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1인 지식 창업가라고 할 수 있어. 깊은 마음속에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아직 너무 먼 곳이라고 생각하고 몇 단계를 거쳐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


4월 말쯤 인스타그램 ‘1일 1피드’를 시작했어. 거의 두 달 가까이 지속했던 것 같아. 특별히 목표가 있다거나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한 건 아니었고, 이 정도 열정도 없고 이 정도 아웃풋도 내지 못하면 그 어떤 새로운 도전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어.


5월 중순,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을 대상으로 노션 무료 강의를 시작했어. 팔로워 1K 감사 이벤트라는 명목으로. 총 5번 했던 걸로 기억해. 준비도 참 열심히 했고 수강생 반응도 괜찮았는데, 강의라는 형태가 나에게 잘 맞지는 않더라.


이 시기에 커피챗도 자주 했어. 인스타로 인연이 된 분들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뵙는 이벤트였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었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눠 드릴 이야기가 있을까 해서. 올해 총 21번 했는데 4월에서 7월 사이에 15번 정도 한 것 같아. 즐거운 경험이었어.


이 전환과 탐색의 시간 동안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열망이 무엇이고 나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바로 읽고 쓰는 삶. 내가 갈 길이 ‘작가’라고 명확하게 알게 되었지.



그리하여 8월부터 12월은 선택과 도전의 시간이었어.


8월부터 작가의 길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후 모든 활동을 ‘글’에 집중시켰어.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전념했지. 7월 20일, 블로그에 첫 글을 올리고 책 읽고 글 쓰는 이야기를 남기기 시작했지. 브런치 작가도 신청했고. 8월 초,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고 9월에는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과 플라이북 파일럿에 선정되었어. 


11월 1일, 바로 <엮은이 닷노트> 첫 편지를 보냈어. 인스타나 블로그에 아무리 글을 올려도 글쓰기 능력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이 편지를 연재하면서 글쓰기에 대해 정말 많은 점을 배우게 되었어.


12월 1일, 아내가 회사에 복직하였고,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심하게 되었지. 내년에는 회사에 다시 다니면서 작가의 길에 계속 도전하기로.



연말 시상식 형태로 올 한 해를 회고해 봤어�


<2023년의 나의 콘텐츠 �>

� 엮은이 닷노트 9편

� 브런치 글 9개, 인스타 글 170개, 블로그 글 53개

� 읽은 책 72권



<올해의 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올해의 음악�>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류이치 사카모토

<Merry-Go-Round of Life(인생의 회전목마)>, 히사이시 조

<Claire de Lune(달빛)>, 드뷔시



<올해의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올해의 글�>

<아빠는 퇴직, 엄마는 복직> 4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엮은이 닷노트 5호(2023.11.29.)



<올해의 문장�>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올해의 만남�>

엮은이 닷노트 구독자 분들



<올해의 장소�️>

강릉 경포대 해변

부산 밤산책방



나의 2023년은 이렇게 흘렀어. 직장생활 10년 동안 내 인생의 키를 놓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는데, 올해는 많은 면에서 스스로 달라졌고 다시 중심을 잡게 된 것 같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고. 1년 동안 앞으로 10년, 20년을 단단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 같아.


OO의 2023년 이야기는 어떻게 흘렀을까? 무엇보다 건강하게 한 해 보냈기를 바라고, 다정한 이야기 속에서 온전하게 존재했기를 바라.


연말 마무리 잘하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 보내면 좋겠어. 새해 복 많이 받아!


오늘도 내일도 다정한 하루 보내기를.

이전 08화 여덟 번째 편지 - 2023년 12월 21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