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다정한 OO에게,
OO 안녕? 벌써 일곱 번째 편지를 보내. 이 레터를 준비할 때 생각이 나. 비로소 제대로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갔어.
여섯 통의 편지에 2만 자가 훌쩍 넘는 글을 담았어.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이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구구절절 참 많은 말을 했구나 싶어.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내 편지를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는지, OO의 마음에 가장 와닿은 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느덧 퇴사한 지 아홉 달이 지났고, 본격적으로 읽고 쓰는 삶을 산 지는 다섯 달 정도 되었어. 읽고 쓸수록 나의 하루하루가 더욱 좋아져. 특히 <엮은이 닷노트>를 준비하고 보낸 약 세 달 동안 정말 충분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낸 것 같아.
그만큼 난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읽고 쓰면서 나와 세상을 연결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야. OO는 얼마나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 읽고 쓰는 행위가 OO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오늘은 좀 잔잔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문학과 이야기의 힘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을 써보려 해. 타자와 세상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내 안으로 향하는 관점으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아 보자면, 두 시기가 바로 떠올라. 2014년 겨울과 봄, 그리고 2022년 겨울과 봄. 바쁜 정도나 고생한 정도를 따져보면 더 어려운 시기도 있는데, 저 두 시기에는 정말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괴로웠어. 그 시기들이 모두 퇴사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2014년 1월 말, 나는 소치 올림픽 선수단의 선발대로 파견되었어. 그리고 33일 동안 현장에서 온갖 일을 하면서 행복했고 한편으로 힘들었지. 올림픽이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했는데, 다른 팀원들은 모두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충분히 쉬지 못했어. 청와대 선수단 오찬 행사와 김연아 선수 제소 건을 연달아서 맡게 되어 쉴 수가 없었지. 또, 수많은 동료 직원들이 나의 공을 인정해 주었지만, 정작 공식 포상 논의에서는 저연차 직원이라는 이유로 간단히 배제되었어. 전 세계인의 축제인 화려한 올림픽 무대에서 돌아와 쾌쾌한 사무실에 앉아 허무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자니, 모든 일들이 부질없어 보이기도 했지.
2022년 2월, 나를 팀장으로 발령하는 절차가 진행되었어. 회사 규정상 아직 팀장이 될 수 없는 직급이었고, 나 정도 연차에 팀장이 된 사람도 없었지만, 부서 상사들은 나와 부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진행시켰어. 결과적으로 정식 발령은 못 받았는데 팀장 역할을 하며 팀장의 일을 하고 팀장으로 불리게 되었지. 그 와중에 좋은 팀장이 되고 싶어 상사와 팀원들 사이에서 분투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팀장이 되지 못했고, 이상한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고, 일부러 업무를 떠맡으며 스스로를 갉아먹었지. 이 몇 달 동안, 10명에 가까운 직원을 떠나보내고 새로 만나기도 했고. 여름이 끝나갈 즈음, 이 모든 고생을 보상받고 싶다는 억하심정이 자라나 언제든 폭발할 것처럼 위태로운 사람이 되어 버렸지.
이 두 시기를 수십 번 곱씹으며 내가 왜 그렇게 괴롭고 비참하게 느꼈을까 생각해 봤어.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오르긴 했는데, 그중 두 시기에 다 해당하고 유독 그 두 시기에 심했던 상태가 있어. 바로 크게 보자면 문화생활, 구체적으로 책, 그중에서도 문학을 가까이하지 못했던 시기라는 점이야.
그때도 좋아하는 노래는 지속적으로 들었고, 종종 웹툰 같이 킬링타임 콘텐츠들도 접했지만, 너무 바쁘고 괴로워서 책을 아예 읽지 못했고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어. 음악, 만화 같은 콘텐츠는 그 나름의 장점이 많지만 충분히 긴 이야기와 서사를 담은 문학이나 영화만큼 나에게 강력한 힘을 주는 것 같지 않아. 전자는 일시적으로 감정을 해소해 주는 역할이 있지만,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는 장기적으로 내 내면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스토리, 구조, 콘텍스트, 맥락, 상상력, 이미지 등 이야기의 특성에 깊이 감응하나 봐.
몇 가지 이야기가 생각 나. 일과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야기는 영화 <제리 맥과이어>야. 스포츠 에이전트와 미식축구 선수 이야기인데, 중학교 때 이 영화를 몇 번 반복해서 보면서 스포츠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꿈과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지. 고등학교 때 한국 근현대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시대를 밝히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광장>, <운수 좋은 날>, <삼대>, 이육사와 이상의 시 등. 또, 대학교 영문과 수업에서 <자기 신뢰>, <위대한 개츠비> 등을 읽고, 남들을 따라가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향을 좇는 게 위대한 삶이라고 생각했지. 그래도 계속 헤맸고 수없이 실수를 저질렀지만.
첫 회사에서 번아웃을 겪고 일의 의미를 잃어갈 때, 내 마음에 와닿은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야.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이상적인 삶은 현재에 집중하고 만족하는 삶이고, 그 삶을 얻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어바웃타임>이야. 당시의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와 몇 번 반복해서 본 영화인데,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내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는 삶이고 그 선택의 길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 기억들을 되짚어 보면서 소설, 시, 영화, 그리고 취향이 내 삶에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어.
많은 작가와 전문가들이 이야기와 문학의 위대함, 쓰임, 힘에 대해 말하지. 특히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한 이해, 공감, 그리고 연대의 힘,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점.
김영하 작가는 책 <읽다>에서 이렇게 말해.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들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이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진다. 나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 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질문을 하게 돼. 이야기에 나를 대입해서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서, 우리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고 삶의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아.
인류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본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 가운데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구의 지배종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어. 조나단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에 따르면 인간은 이야기를 탐지하는 본능 덕분에 삶을 의미 있게 경험한다고 해.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들어 있다. 그의 임무는 지금 관찰되는 것을 ‘역추리’해서 특정한 결과로 귀결된 원인의 질서 정연한 연쇄를 밝히는 것이다. 진화가 우리 속에 홈스를 넣어 둔 까닭은 세상이 실제로 이야기(음모, 책략, 제휴, 인과 관계)로 가득하며 이를 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마음은 중대한 진화적 적응이다. 그 덕에 우리는 삶을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고 의미 있게 경험한다. 삶이 지독하고 소란스러운 혼란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사회의 윤활유이자 접착제이다. 올바른 행동을 장려함으로써 사회적 마찰을 줄이고 공통의 가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묶는다. 이야기는 우리를 균질화한다. 즉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마셜 맥루언의 ‘지구촌’ 개념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 기술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매체를 접하게 함으로써 전 세계를 아우르는 마을의 주민이 되게 한다.”
OO의 삶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어? OO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해. OO의 희망, 기쁨, 믿음, 절망, 슬픔, 고통.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결국은 다정한 결말로 흐르기를 바라.
마지막으로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나오는 구절을 들려주고 싶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언젠가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또 편지 보낼게.
오늘도 내일도 다정한 하루 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