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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작가 Jan 06. 2020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airport ( 볼트 이용기 )

회사 안 가고 동유럽 가기-7


 우리나라에는 타다가 있고, 다른 나라에는 우버가 있다. 그리고 체코에는 볼트(bolt)가 있다. 여행 와서 택시를 한 번도 안 타다가 공항으로 가는 길이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해서 마지막 날 만큼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큰 캐리어가 없어서 친구에게 빌려왔는데, 무려 30인치였다. 키가 꽤 큰 편인데도 거의 내 골반을 넘는 캐리어의 크기는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볼트를 처음 이용하면 몇 천 원 할인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볼트 앱을 깔고 가입하는데 승인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검색의 민족이다.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은 이미 많았다. 친구 번호로 가입하고, 승인 번호를 친구가 전송해주면 내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볼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때 시각 새벽 두시쯤이었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했다.




숙소(소피스 호스텔)을 떠나기 전 마지막 날



다음날이 되어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숙소를 나섰다. 마지막 날마저도 프라하의 날씨는 한국으로 떠나지 말라고 붙잡고 있었다.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스벅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출근하는 건지 등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침이라 분주한 프라하 사람들을 넋 놓고 구경했다. 슬슬 볼트를 부를 시간이 되었다. 차가 배차되었고 기사님의 얼굴과 차 넘버가 앱에 떴다. 덜 마신 커피를 들고 낑낑대며 30인치 캐리어를 들고 나왔다. 오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트램 차선과 일반 승용차 차선이 혼란스러워서 도통 어디서 기다려야 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혼잡한 버스 정류장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대충 사람이 좀 덜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서있었다. 조금 있다 보니 앱에 떴던 넘버를 가진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스타벅스 가는 길



기사님과 짧게 눈인사를 나눈 뒤, 친절하게 대형 캐리어를 들어서 트렁크에 실어주시고 출발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프라하 안녕. 또 언제 올지 모르겠다.' 하며 프라하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기사님이 말을 거셨다. 그런데

'ㅠㅑㄲㄸ'

이런 식으로 들렸다.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못 알아들었다는 얼굴을 하자, 기사님은 또다시

'땨껶ㄲㅒㄲ'

라고 하셨다.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 뭔가 어떤 말을 계속 반복하시는데, 그게 분명 같은 소리이기는 했는데 영어가 아닌 것이다. 그다지 긴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못 알아듣는 것이 괜히 죄송했다. 연신 쏘리를 말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어딘가에 전화를 거시고는, 아마도 체코어였던 것 같은 말로, 누군가에게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주셨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건너편에 있는 분이 뭐라고 길게 얘기하셨는데,

'어ㄸㅓs ㅁaㄹ;으r 하ㄱ ㅣㄴ'

이런 식으로 들렸다. 영어긴 영언데, 어떤 억양과 합쳐져서 조합이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사님은 내가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영어를 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거시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더 죄송하게도 그조차도 못 알아듣겠는 것이다. 쏘리를 외쳐가며 전화기를 돌려드리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파파고로 적어달라고 써서 보여드렸다. 내가 영어로 말은 잘 못해도 듣거나 볼 수는 있듯이, 왠지 기사님도 이 정도는 알아보실 것 같았다. 기사님이 '써서 보여주세요'가 영어로 번역된 파파고 화면을 보시고는, 자신의 핸드폰에 'aㅔㅓpㅗ오'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다. 음성 인식이었다. 그러자 화면에 뭔가 떴고, 기사님은 나에게 보여줬다.

다름 아닌 'airport'. 공항이었다. 볼트 앱에서 도착지를 프라하 공항으로 찍기는 했지만, 기사님은 혹시 모를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공항으로 가는 게 맞는 건지 확인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airport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맞다고 대답했고, 기사님도 그제야 미소 지었다. 장장 이십 분간의 에어포트 대란을 마치고 나서야 기사님은 운전을, 나는 사색을 하며 조용히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프라하 공항에서 마지막 1일1맥주


 도착 후 재빠르게 거대한 캐리어를 트렁크에서 꺼내어 보도 블록 위로 올려주셨다. 짧은 시간 안에 뭔가 큰 산 하나를 넘은 것 같은 사이가 된 것 같아서 진심을 다해 'thank you very much'를 외쳤다. 영어로 답 인사를 주신 건 아니었지만, 무언의 언어로 인사해주시고는 차를 타고 떠나셨다. 처음이자 마지막 볼트 이용이 약간 험난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나에게 '공항'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해주셨던 기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떠나는 것이 많이 아쉬워서 전날 밤도, 볼트 안에서도, 공항에서 맥주를 마실 때도 조금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그렇지만 프라하에서 발을 떼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히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주고, 아쉬움이 그리움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해 준 볼트 기사님에게 정말 고맙다. 서로가 쓰는 언어는 한국과 체코의 거리만큼이나 달라서 다소 불편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 하나로도 금세 올 수 있는 만큼이나 가까워서 노력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여행의 기억은 도시보다 사람이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첫 프라하는 여러모로 잊지 못할 도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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