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말

은 뻥인 줄 알았지

by 효수

어릴 적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아픈 자식을 대신해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였고, tv프로그램 속에서 마주한 그녀의 눈물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던 걸로 기억한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 위로 후원이란 단어가 보였고, 여러 개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모녀의 사연은 무척이나 안타까웠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정확히 어떤 감정이 녹아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슬프고 안타까워 눈물을 한 두 방울 흘렸고, 후원은 하지 않았다.


"언니 미안한데 체온계 좀 가져다줄래?"


아기를 안고 있던 동생의 말에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삐빅"

소리를 내며 체온계 화면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아기의 긴 울음이, 뜨거운 몸이, 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했다.


*



호는 자주 울지만 길게 울지는 않았다.

분유를 탄 젖병을 입에 물려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안아주면 울음을 그친 채 눈물이 머금은 눈을 하고서 앞에 있는 어른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참으로 귀여워 안은 손에 따듯한 감정을 담았다. 호의 등을 토닥인다. 내 감정은 몽글거리는 상태가 되었지만 어깨가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기엄마와 아기의 이모는 점점 생기를 잃었다. 잠이 부족한 초췌한 얼굴. 아기의 침과 토가 묻어버린 티. 그 위에 올려진 가재수건. 지저분해지는 어른과는 달리 아기의 청결상태는 흠잡을 데가 없다. 매일 하는 샤워, 아침저녁으로 갈아입혀지는 옷, 세척에 소독까지 잊지 않는 아기용품, 아기옷이 담긴 세탁기는 매일 돌아가지만 어른의 빨래는 쌓여만 간다. 아기의 생기가 늘어갈수록, 고보습 크림이 잔뜩 발려진 통통한 볼이 더욱 매끄러워질수록 어른은 생기를 잃었고, 퍼석이는 얼굴피부에 주름이 늘었다. 피곤함에 예민함이 바짝 올라올 즈음 이제는 번갈아가며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쉬는 시간에 샤워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자꾸만 누워서 휴대폰이 보고 싶어진다

. 아기 앞에서 휴대폰을 보지 않는 것은 우리의 무언의 규칙이다.


호는 작고 가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펴는 형태로 대부분 사용하다 이제는 손가락 모양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엄지검지손가락을 펴 가위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힘도 제법 세져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잡아당기는데, 어른의 머리카락이 호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가면 사정없이 쥐어뜯진다.


아기는 잘못이 없다.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머리카락이 긴 어른이 머리카락을 잘 추스르지 못한 탓이니 알아서 잘 조심하기로 한다. 머리카락을 질끈 묶어보지만 그럼에도 추스르지 못해 흘러나온 머리카락이 어김없이 호의 손에 어간다. 악소리가 절로 나고 덜컥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다.


이 녀석이! 이 녀석이?

응?

급하게 현실을 자각한다. 내 앞에 있는 존재는 아기이며, 동생의 자녀이고, 조카이다.


"이모가 무섭게 쳐다봐서 미안해"


나는 호에게 사과했다.

내 감정을 아기는 알까?

다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게 있을까?

이 순간 나는 호에게 미안했고, 아기를 향한 분노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



호의 체온이 높다.

38.x°.. 39.x°.. 체온이 점점 더 높아졌다.

호는 악을 쓰며 울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지친 듯 잠들었다.


아기엄마는 그날 밤 잠들 수 없었다.

밤 새 시간 간격을 두고 아이의 귀에 체온계를 꽂고, 체온을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아기의 엄마는 자신의 아기를 대할 때의 마음으로 체온을 측정했던 경험이 몇 번이나 될까?

그녀에게 체온을 측정하는 일은 단순한 업무일 뿐이었겠지.

아픈 자녀의 체온을 측정하는 일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되었을까?

호가 예방접종주사를 맞고 아파 악을 쓰며 눈물 흘릴 때 내 마음은 무척이나 안 좋았다. 아기가 안쓰러웠고, 안타까웠다. 주사는 원래 아픈 거야라고 말하는 호의 엄마를 보며 냉정한 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저 침착함 속에 어떤 감정이 채워져 있을지 문득 궁금했다.


*




호의 엄마와 나는 종종 답답함과 우울함에 잠식되었다.

그럴 때면 유모차에 호를 눕힌 채 산책을 나가거나,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혹시나 그때 아기가 감기에 걸려버린 걸까?

걱정이 되었고, 호에게 미안했고, 속이 상했지만 그날밤 평소보다는 늦게, 그래도 잠에 들었다.


다음엔 인근 병원에 다녀왔고, 해열제를 처방받았다.

호는 며칠 동안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해열제를 먹이면 일시적으로는 괜찮아졌지만 다시 아파 칭얼거리고 울어버렸다. 호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호의 엄마는 서울로 돌아갔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큰 병원이 인근에 있는 곳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서울로 돌아간 호의 가족들은 또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입원을 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아기들 사이에 유행하던 질병이 있던지라 부족한 입원실로 입원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루이틀이 더 지나고, 아픈 호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호의 엄마는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호는 폐렴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는데 마음이 찢기는 듯 아팠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눈물이 났다. 말의 역양이 느껴지지 않는 아기엄마의 목소리에는 감정의 동요가 없는듯했다. 다인실이 없어서 1인 병실에 입원을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비싸겠다고 말하니 어쩔 수 없지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호의 입원생활은 간간이 사진을 통해 전달되었다.

호가 울지도 않는다고 했다. 호가 울힘도 없어서 누워만 있는다고 했다. 그러다 까무룩 잠든 아기, 수액을 맞기 위해 꽂힌 바늘이 뽑힐까 고정판에 붕대를 단단히 팔을 한 사진에 눈을 잠시 고정했다.

아기엄마의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많이 힘들구나'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의 병원생활 끝에 호는 퇴원을 했다. 얼마간 집안에서 회복을 더 해야 하긴 했지만 입원해서 수액을 꾸준히 맞고,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으니 집에서 약만 먹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더 빨리 입원을 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생한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걸까. 나는 왜 종종 호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된 건지 궁금해졌다.


*




"호가 울지도 못하고 늘어져있는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한참 후에야 다시 만난 아기엄마는 호가 아팠던 지난날의 상황을 복기하는 듯 말했다. 속상해서 누워서 울었다고도 말했다. 눈물방물이 떨어질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동생이 귀여웠다.


말하지 않는다고 아픈 게 아프지 않은 게 아니듯 내 동생은 아주 많이 슬펐고, 안타까웠으며 감히 내가 짐작할 수도 없을만한 감정을 견뎠을 것이다. 이번 관찰에는 다양한 슬픔의 감정의 필요했고, 아기를 포함한 어른들의 눈물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다만. 호가 아프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 집 애기. 나의 조카 호가 아프지 않게, 웃으며 살아가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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