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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고로호 Jun 19. 2024

아빠의 재발견

아빠와 같이 살 때 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아빠의 사랑을 가슴깊이 실감해본 적도 없었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그렇듯이 아빠는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냥 아빠였고 언제까지나 그냥 아빠일 것 같았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보면 항상 이렇게 말했다.  "아유, 그 집은 딸은 엄마를 빼닮고 아들은 아주 아빠랑 판박이네." 누가 봐도 나는 아빠보다는 엄마의 딸이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와 내가 닮은 점을 굳이 따져보자면 아래로 처진 눈썹과 지성두피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으로 독립을 한 후 서른이 넘어서야 누군가에게 처음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놀라 “제가요?”라고 반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빠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




아빠와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워서 드라마와 영화와 동물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즐긴다. 가끔 앉아서 보기도 하지만 꼭 누워줘야한다. 식성도 닮았다. 기본적으로 뭐든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특히나 빵을 사랑한다. 안락함을 사랑하여 집에 머무는 것을 즐기지만 호기심이 강해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일도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 아빠가 취미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 창작이 내 유전자에 아주 없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다. 경쟁심과 욕심이 없어 안분지족하는 것도, 무던한 듯 하면서도 예민한 구석이 있는 성격도 비슷하다. 성향뿐만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동안 꽁꽁 숨어있던 아빠의 유전자가 뒤늦게 발현하고 있다. 내 얼굴에서 점점 아빠가 보인다. 나는 아주 오래 엄마의 딸이었는데 이제는 아빠의 딸로도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이제 나는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부분이 아빠에게서 왔음을 안다.




대학시절 단짝의 아빠는 딸바보였다. 친구의 아빠는 스무살도 넘은 딸이 너무 예뻐 어쩔 줄 몰랐다. 친구도 그런 아빠에게 애교가 넘쳤다. 친구네 집에 갈 때 마다 나는 다정하고 살가운 부녀사이가 부럽다기보다는 신기했다. 항상 자식보다는 엄마를 더 사랑했던 아빠의 애정표현은 엄마에게 한정됐다. 나 또한 아빠에게 애교많은 딸은 못됐기에 그 상황에 불만은 없었다. 대신 아빠는 어디든 나를 데려다줬다. 어릴 때는 화물차에 나와 동생을 태우고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녔고 먼 동네에 있던 치과도 데려가주고 학창시절에는 자주 학교앞까지 태워줬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어학시험을 볼 때면 어김없이 나를 시험장앞에 내려줬다. 그때는 그게 자식에 대한 아빠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같이 살 때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아빠의 픽업은 몇년전 내게 차가 생길 때까지도 드문드문 이어졌다. 내게 차가 생기고 나니 더이상 아빠의 도움이 필요없어진 듯 싶었다. 하지만 심심치 않게 병원 갈 일이 생겼다. 타박상을 입어 제대로 걷지 못했을 때도 아빠가 나를 부축해서 병원에 다녀왔다. 위와 대장내시경을 할 때는 또 어떻고. 갑자기 일이 바빠 시간을 내지 못한 남편대신 나는 수면마취가 덜 깨어 어지러운 몸을 아빠에게 기댔다. 몇 달전 갑자기 몸의 반쪽이 저리고 힘이 빠져 급하게 병원에 갈 때도 아빠는 한달음에 달려와줬다. 아빠와 함께 병원에 들어갔는데 접수대에서 아빠를 환자로 여기고 인적사항을 물어 웃음이 터진 적도 있었다. 누가봐도 머리가 하얗고 등이 굽은 아빠쪽이 환자고 딸인 내가 보호자로 보일터였다. 어린 자식을 부양하지 않아도 된지는 이미 오래됐지만 아빠는 여전히 딸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마다 함께 해준다. 늙은 아빠의 부축을 받아 병원에 다녀오며 나는 그것이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임을 깨달았다.





아빠와 함께 살 때는 몰랐던 아빠의 인간적인 매력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도 시간과 함께 쌓여갔다. 가족모임으로 부페를 갔던 어느 날, 공교롭게도 나는 힘든 일이 있어 입맛이 달아난 상태였다. 아빠는 여러 접시를 맛있게 싹싹 먹어치은 후 언제나처럼 식사의 마지막을 팥빙수로 장식하고 있었다. 순간 궁금해졌다.

“나는 오늘 영 입맛이 없네. 아빠는 입맛 없던 적 있어?”

칠십이 넘게 세상을 살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한두번 정도는 입맛이 없었던 적이 있지 않겠냐는 대답을 기대했던 내게 아빠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난 살면서 한번도 입맛이 없던 적이 없다.”

“아빠, 살면서 힘든 적도 많았잖아. 그럴 때는 입맛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힘든 적은 많아도 입맛없던 적은 없었다.” 가족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아빠의 말을 가훈으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인생은 힘들지만 입맛은 잃지 말자.> 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빠가 이렇게 귀엽고 웃긴 사람이라는 것을. 아빠라는 한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빠를 만나면 아빠가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인생을 살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열심히 질문한다.




날씨가 좋았던 휴일에 동네를 걷는데 그날따라 아빠와 딸이 함께 하는 모습이 연달아 눈에 들어왔다. 딸을 번쩍 안아들고 웃으며 차에 태우는 아빠. 딸의 손을 잡고 걷다가 뭔가가 놓고 왔다는 듯 다급하게 딸과 함께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아빠, “아빠, 나 봐봐!”라고 외치며 한발로 킥보드를 타는 딸을 지켜보는 아빠. 아이들은 어렸고 아빠들은 젊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딸, 무슨 일이야?” 나이든 아빠는 중년이 된 딸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아빠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일에는 주식을 하고 가끔 친구가 일하는 작업장에 마실을 다녀오고 2주에 한번은 고스톱 모임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최근들어 통풍이 심해져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는데 금방 좋아질 거라고도 했다. 통화를 마치며 아빠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이 새삼 감사했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고 사랑하는데는 때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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