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던 내가 아냐
최근 흔히 ‘범죄학자’라 하면 떠오르는 몇몇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혹은 이렇거나,
혹은 이런,
이러한 '범죄학자'에 대한 많은 이미지들이 '오해'라고 까지 하기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전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자, CSI.
대체 '범죄학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범죄학자'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이해들로 그 설명을 대신해 보려고 한다.
#1. '범죄'라는 주제로 엮인 학문을 하는 사람
'범죄(犯罪)'에 대해 '공부(學)'하는 것.
가장 간단하고도 쉽게 말할 수 있는 '범죄학'의 의미이다.
범죄학에 대한 단순한 수준의 접근방법으로는 '범죄'와 '범죄자'를 공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바로 잘 알려진 모습의 범죄학이라고 여겨진다. 범죄와 범죄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를 통해 범죄를 없애는 것에 힘쓰는 것.
흔히 알고 있는 범죄학자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이러한 학자들만이 정통 범죄학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범죄' 그 자체에 몰두해 범죄자가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들이다.
특히, 범죄심리학자는 이러한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해 그 원인을 알고 현재 활동 중인 범죄자를 추적하는데 도움을 주거나 혹은 수감된 범죄자의 심리를 파악해 미래에 있을 유사한 범죄자가 나타났을 때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순수한 학문성을 띄고 다양한 방면으로 범죄자가 되는 원인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러한 분야에서 '프로파일러'와 같은 범죄자를 쫓는데 특화된 전문직이 생겨났고, 이러한 매력이 많은 대중이 '프로파일러'와 '범죄심리학'에 관심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범죄자의 심리만을 파악하는 것이 범죄학자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종종 범죄학을 다른 학문에 비유할 때 등장하는 학문은 '의학'이다. 사람의 몸에 있는 병을 없애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해주는 학문인 의학은 '사회의 병'이라고 할 수 있는 범죄를 줄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병'과 '범죄'를 구분해야 하는 부분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개체가 자유의지(agency)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나름의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병'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반면에 사회는 자가의지를 가지는 개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으로, 개인 사이의 관계, 문화나 관습 등 배워오고 습득해온 것들이 개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 사회적 개체가 부정적인 영향만 받고 살아왔다고 해서 '범죄'와 무조건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원리는 '병'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지만, 의학에서는 단순히 병을 '없애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반면, 범죄학에서는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개체, 즉 범죄자를 '없애는 것'에만 집중할 수는 없다.
'죄를 미워하되 죄를 지은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죄'를 없애되 '죄를 지은 사람'은 없앨 수 없는 상황에서, 범죄학은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죄를 지은 사람'을 단순히 제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겨나면서, 이제껏 일반적으로 '인간'을 공부하는데 필요했던 모든 학문들이 '범죄자'를 공부하는데도 모두 필요하게 되었다.
더욱 다양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된다.
#2. 그 어느 전공자라도 '범죄학자'일 수 있다
'인간'을 공부하는 데에 있어 필요해 왔던 수많은 학문은 '범죄자'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애초부터 '범죄학'은 이렇게 보편적으로 시작되지는 못했다. '범죄자'자체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범죄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은 '생물학(biology)'에서 시작했다. 흔히, 이탈리안 생물학자 롬브로소(Cesare Lombroso, 1835-1909)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범죄학은 특정한 생물학적 특성(혹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자임을 단정 지으려 노력했고,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 통제시키는 것에 그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후, 연구와 경험적 결과를 통해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더라'를 깨달은 범죄학은 다른 답을 찾아 떠난다.
어느 날 보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어느 날 보니 질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이
어느 날 보니 특정 인종의 사람들이
어느 날 보니 특정 연령대나 성별의 사람들이
어느 날 보니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어느 날 보니 가난한 동네 출신의 사람들이
'그렇더라'에서 시작된 범죄학의 여러 시도들은 그 어떤 사회현상이 그렇듯 '모두 그렇진 않더라'로 끝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화, 사회, 심리, 인류학 등 사회과학의 전반적인 분야들이 범죄학에 하나 둘 합류하게 되었다.
범죄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사회과학이 다양한 방면으로 범죄학에 합류했다면, 범죄를 '관리'하기 위해 발전한 학문 또한 함께 그 분야를 넓혀왔다. 범죄의 법적 정당성과 범죄자의 형벌 등에 대해 연구하는 '법학', 범죄자를 일선에서 다루는 경찰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를 하는 '경찰학', 범죄 수사에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종합적으로 하는 '수사학', 교도소와 감옥 등 교정시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교정학' 등 행정과 실무와 더욱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와 같은 학문들은, 기존에도 존재했던 학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분야들은 '범죄학'내에 포함되는 것이 어색하지만, 이 또한 큰 범주의 '범죄학'에 포함할 수 있다.
특히 수사학 중 '과학수사'분야는 범죄학의 분야를 과학의 전 분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어떠한 과학분야를 전공으로 하든, 응용만 가능하다면 범죄학의 분야에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범죄학에서는 지리 분석을 통한 범죄분석, 도시 재조성을 통한 범죄 예방 등 구조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지리학, 도시공학 등의 분야와의 접목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야들은 '실무자'와 '학자'가 동일할 수도 혹은 분리될 수도 있다. 경찰이지만 경찰학의 기본적인 과정 이외에 연구나 학술적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변호사나 검사로, 판사로 실무에서 활동하면서 형법학자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어떤 과학분석 전문가는 증거를 수집하여 과학분석을 진행해 범인을 잡는데 실무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다른 과학분석 전문가는 어떠한 방법으로 증거를 분석하는 것이 효율적 일지, 혹은 새로운 분석방법을 연구하여 실무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어느 학문을 하더라도 '범죄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가장 연관성이 없는 분야를 예상해보자. 가령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단순히 가능할 수 있을 연구들을 생각해 보면, 특정 범죄자가 즐겨 듣는 음악이나, 어떠한 그림이 나타내는 범죄자의 심리상태 같은 것들이 있겠다.
그 외에도 물론 다양한 방면으로 범죄학이 음악과 미술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클래식 음악을 거리에서 흘러나오게 했을 때, 거리의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 라든가,
Hirsch, L. E. (2007). Weaponizing classical music: Crime prevention and symbolic power in the age of repetition. Journal of Popular Music Studies, 19(4), 342.
도시의 그라피티에 관한 연구를 통해 청소년 범죄에 접근한 연구 같은 것들이 말이다.
Ferrell, J. (1995). Urban graffiti: Crime, control, and resistance. Youth & Society, 27(1), 73-92.
어떻게 발전시켜 접근하는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3. 결국엔 '학자(學者)'
이 얘기는 무엇이냐.
다음과 같은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범죄학'도 결국엔 '공부'다.
'범죄학자'가 보이는 많은 부분, 생각보다 더욱 많은 분야에서 '범죄'와 관련된 '학자'들이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범죄학자'가 더욱 많다.
무엇을 해왔건, 당신도 원하는 그 순간 '범죄학자'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댓글로 본인의 전공과 범죄분야에서의 관심분야를 적어주시면 관련된 범죄학 분야나 연구를 댓글로 답변드려보려고 합니다. 잘 이루어질지 걱정은 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