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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인 Aug 06. 2017

'싸이코패스'와 '싸이코패스 범죄자'는 다르다

모든 싸이코패스가 범죄자는 아니다


언제부터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단어를 듣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연쇄살인범들인 유영철과 강호순 등이 등장하면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등장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사이코패스의 첫 기억인 것 같다. 처음엔 단순히 '미친'것보다 '지능적으로 미친'것 같게 느껴졌던 사이코패스는, 이후 내가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학'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주 마주하게 된 주제가 되었다.



#1. 범죄학에서도 생소했던 '사이코패스'


범죄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최근에 유명한 사건의 용의자를 말하며)... 는 사이코패스인가?'였다. 조금이라도 잔인하거나, 계획적이거나, 치밀하거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 흔히 물어오는 질문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분야라 정확한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이코패스의 학문적 범주는 인간의 심리인 '심리학'인 데다, 범죄자들을 조사하면서 발견하게 된 성질인 터라 '범죄심리학'의 완성된 주제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는 주요한 주제이다. 하지만 이 외의 범죄학 분야인 범죄사회학, 경찰학, 정책학, 교정학, 형법학 등에서는 사이코패스의 구체적인 심리나 원인 등에 대해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석, 박사과정 내내 사이코패스를 주제로 학술적 시간을 가졌던 것은 몇 년 동안 수업 한두 시간 정도로 기억할 정도로 미약한 수준이었다.)


나는 범죄'심리학'을 하지 않았으니 '심리학적'접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범죄학은 이 또한 나의 관심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사이코패스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확장성이 있다. 예를 들면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들의 범죄성향을 사회학적, 인류학적 등으로 밝혀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연구는 범죄심리학자가 함께해 준다면 심리학적 전문성 또한 우수하게 갖춘 훌륭한 연구결과로 거듭날 수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근접 연구

- 김진혁. (2014). 사이코패스에 대한 형사정책적 접근. 한국범죄심리연구, 10, 81-101.
- 박지선. (2014). 사이코패스에 관한 대중의 인식과 두려움. 한국범죄학, 8(2), 145-175.
- 최현주. (2010). 사이코패스 범죄보도의 젠더 담론. 사회과학연구, 21(1), 169-190.



#2. 사이코패스=범죄자?


사이코패스를 연구한다고 해보자.


먼저 연구를 위해서는 대상자를 찾아야 한다. 사이코패스로 알려져 있는 '범죄자'들을 찾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그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설문조사보다는 심층 인터뷰와 같은 형태로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해 전문성과 정보적인 접근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범죄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학술지와 도서로 만날 수 있다. 


사이코패스 자체에 대한 연구

- 이수정, 이동길, & 위희정. (2015).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PCL-R* 2, 3, 4 요인 모형 타당성 검증. 한국범죄학, 9(2), 3-32. 
- 연현진, 한애경, & 윤혜미. (2011). 남자범죄청소년의 부모양육행동, 학대피해경험과 사이코패스 성향의 관련성 및 자기통제력의 매개효과. 정신보건과 사회사업, 38(단일호), 141-171.
- 이수정, 김경옥. (2016).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중앙 M&B.

*PCL-R: 사이코패스 테스트 체크리스트 (Psychopathy Checklist—Revised)



사이코패스도 감정이 있다. 단지 그 형태가 다를 뿐.



최근에는 웬만한 범죄자에게, 일상에서 차갑고 매정하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도 '사이코패스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한 번쯤 저절로 흘러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 되어버린 이 단어에 대해 이제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보이는 학자들이 있다.


사이코패스의 개념 자체는 범죄자를 조사하면서 발전하게 되었지만, 최근에는 사이코패스의 성질이 CEO, 의사, 법조계, 방송직 등 고도의 스트레스와 결단력을 요구하는 직종의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직종들이 아니더라도 '기업형 사이코패스(corporate psychopaths)'로 연구되고 있는 사이코패스의 일상형은, 팀원들의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일의 만족도를 낮춘다거나, 업무에 방해가 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형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

- Mathieu, C., Neumann, C. S., Hare, R. D., & Babiak, P. (2014). A dark side of leadership: Corporate psychopathy and its influence on employee well-being and job satisfaction.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59, 83-88.
- Boddy, C. R. (2011). Corporate psychopaths, bullying and unfair supervision in the workplace. Journal of Business Ethics, 100(3), 367-379.
- Boddy, C. R. (2014). Corporate psychopaths, conflict, employee affective well-being and counterproductive work behaviour. Journal of Business Ethics, 121(1), 107-121.



그렇다면 기업형 사이코패스가 되기 전,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을까? 사이코패스는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칠까? 일상에서, 우리 주변에는 사이코패스가 없을까? 그들은 모두 범죄자가 될까?


최근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서는 기존의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의 맹점(범죄자라면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아짐)을 지적하면서, 일상적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성질이라고 생각되고, 그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고 여겨왔던 '공감 능력이 낮다'는 성질이 꼭 범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Boduszek, D., Debowska, A., & Willmott, D. (2017). A new model of psychopathy. The Custodial Review81, 16-17.).


이 연구팀은 기존 연구들이 전체 인구 중 1-2%라고 주장했던 사이코패스의 인구 비율이, 실제로 약 7% 정도가 된다는 연구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또한, 일반 인구 중 1%가 사이코패스이고 범죄자 중 25%가 된다는 격차를 보였던 기존 연구와는 달리, 범죄자 여부를 막론하고 일정한 비율인 약 7%가 사이코패스로 나타나고 있어 '성격으로서의 사이코패스'에 그 힘이 실리고 있다.


*관련 글: 당신이 몰랐던 사이코패스 (브런치 매거진: 범인은 이안에도 있다)



#3.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냐 소시오패스냐의 문제는 학계에서 심각히 다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예상외로 '소시오패스'의 단어조차 어색해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논쟁들을 보아왔지만 나에게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나누는 경계는 '타고난 것'과 '된 것'으로 나눌 수 있음이라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는 유사한 성질을 보이지만, 사이코패스가 어떠한 이유로든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소시오패스는 성장과정에서 사이코패스와 유사한 성질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 구분에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구분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 구분에 대해 학계에서는 특별히 고려하지 않고 있고, 혼용해서 쓰는 경우도 많다.



최근 '나, 소시오패스'라는 일상적 사이코패스가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자서전격의 책이 나왔다. 제목은 소시오패스이지만, 본문을 살펴보면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인식을 피하고 싶어 '소시오패스'로 제목을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범죄자와는 거리가 먼 대학교수이며 법조인이며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미국 시민이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범죄자는 아닌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는 단순한 '이기심', '냉철함', '차가움' 등으로 표현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남들처럼 느껴지지 않는 감정에 죄책감을 갖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도 있을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구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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