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배달 어플 1시간씩 구경해?
퇴근길, 지하철을 타자마자 폰을 꺼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배달 어플 접속이다. 집까지 1시간. 검색하고 주문을 해놔야 집에 갔을 때 기다리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나는 평소에 배달 어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플로 즐기는 맛집 탐방인 셈이다. 먹고싶은 것도 많고, 구체적인 편이라 갑자기 특정 맛이 혀 끝을 스치는 느낌이 들면 지체없이 어플을 켜고 그 음식을 파는 집을 검색한다. 어쩔 때는 치킨버거, 또 어느 날은 주꾸미 볶음. 나의 먹고 싶은 음식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다양하다. 다음에 먹어야지, 저녁에 먹어야지 하며 하트를 눌러놓은 가게들이 수십 곳. 오늘은 힘든 날이었으니까, 금요일이니까, 비가 오니까 등등 수없이 많은 이유로 나를 합리화하며 배달에 돈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배달어플을 30분 넘게 들여다보며 음식을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배달을 포기한다. 10번에 8번은 내릴 때 까지 주문을 완료하지 못하고 집 근처에 있는 분식집을 들려 떡볶이 1인분에 튀김 몇 개를 사거나 패스트푸드에 들려 햄버거 세트를 주문한다.
배달을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먼저 주문 최소금액과 배달비다. 배달을 시켜먹기에 은근 최소주문금액을 채우기가 힘든 곳들이 많다. 매일 피자나 낙곱새, 치킨이 먹고 싶은 게 아니다.이들은 오히려 한끼에 삼만원이라니, 너무 과한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늘 저녁은 가볍게 샐러드, 가끔은 미역국 정식, 김밥 이런 것들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가끔이 아니라 보통은 이런 것들이 주로 먹고싶다) 대부분 이런 음식의 1인분은 주문 최소금액을 넘기기 힘들다. 콜라로 채우자니 아깝고 콜라는 잘 마시지도 않는다. 그래도 큰맘 먹고 먹어보자고 김치찌개에 달걀말이 콜라까지 담고 결제버튼을 누르기 직전, 16000원에 배달비 3500원. 김치찌개 1인분을 거의 2만원에 먹는 셈이다. 국수류는 두그릇은 시켜야한다. 빵은 네다섯개는 사야한다.
두고 내일 먹어라, 빵은 얼려라. 이렇게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매일 매일 먹고싶은게 생기는 내 입맛과 위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물론 어제 먹었던 것을 맛있게 먹는 둔한 입을 가지고 있지만, 또 그 반대로 데워먹기 싫은 예민한 감각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데우기 쉬운 음식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남은 덮밥이라던가, 면같은 경우는 처치하기 너무 곤란하다.
예시를 메인메뉴만으로 들었는데 나는 김치, 단무지와 같은 기본 반찬류를 좋아하지 않아 그 반찬도 곤란하다. 남길 수도 없고 버리기에는… 언젠가 김치가 먹고싶어질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이제 혼밥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생김치를 먹고싶어하는 날은 일년에 한 번정도라는 것을. 어쩌다 1+1로 산 라면과 같이 먹는 80그람짜리 김치도 절반 정도만 먹는다.
1년 전에 산 봉지 김치는 유통기한이 지나서야 뜯어 먹었다. 김치는 발효식품이니까, 유통기한이 지나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먹고 이상도 없었다. 이상이 있을만큼의 많은 양도 아니었다.
그리고 남은 음식 처리와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회용품도 배달을 시키기 싫은 이유에 한 몫을 더한다. 보쌈을 시키면 딸려오는 수없이 많은 쌈거리들! 행복하지만 부담스럽다. ‘김치 단무지 안 주셔도 됩니다’에 체크하고 안 줘도 된다고 한 번 더 적지만 리뷰나 별점 등에 테러를 하는 사람이 있는 절반 정도는 챙겨주셔서 항상 난감하다.
자주 포장하는 백반집은 내가 김치 빼달라는 걸 하도 강조해서 요즘은 거의 안 챙겨주신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으셨는지 오이김치 좀 넣어줄까? 깍두기도 안 먹어? 등 김치 안 먹는 나를 걱정하시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한다. 한식 백반 정식을 포장해가면서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걸 믿지 않으시는 것 같다. 요즘도 김치를 챙겨줄까? 라고 물으셔서 안 먹는게 아니라 다른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다 먹지 못하니까, 버리는게 아까워서 안 챙겨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린다. 최근에는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찌개는 시켜먹어 김치를 아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간혹 어필하기 때문에 날것의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까탈스러운 손님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배달이 어려우면 포장을 하면 되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동네에 나름 단골집도 있고, 혼술을 하러가는 밥집도 있다. 하지만 퇴근길에 포장 주문을 한다? 생각할 것도 항변할 사항도 많다.
지하철 출구에서 우리집까지는 약 700미터이다. 횡단보도도 없다. 구역으로 따지면 큰 길을 끼고 있는 구역이라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 딱 한 번 꺾는다. 꺾어서 우리집까지도 멀지 않다. 지하철에서 급똥 신호가 와서 집이냐 지하철이냐를 고민하다가 출발해도 도착할때까지 사회적 체면 버리지 않아도 되는 거리다. 발걸음이 가벼울때면 5분정도면 도착하는 그 길 사이에 내가 포장을 해 갈 수 있는 음식집은 떡볶이와 햄버거, 샐러드 집 밖에 없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도 없다.배달을 포기한 나는 여기서 또 깊은 고민에 빠진다. 떡볶이냐, 햄버거냐, 샐러드냐. 떡볶이는 순대, 튀김, 라면까지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어야하는데 혼자니까 그러지 못한다. 떡볶이에 튀김 몇 개를 계산하면 대충 6,000원. 햄버거는 버거는 주니어로 하지만 감자튀김은 라지로 대충 7,000원 샐러드는 뭘 해도 시작이 10,000원. 나는 단가와 포만감을 고려해서 샐러드 대신 떡볶이나 햄버거를 선택한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길을 건너거나 다른 출구로 나가서 해결할 수도 있지만, 나만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약속도 없는데, 굳이 옆길로 돌아가는 게 싫은가? 최대한 짧은 동선 안에서 나의 저녁을 해결하고 싶다. 집에서 먹으면 맛이 떨어지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 마음이 지쳐서(보통 몸은 잘 안 지친다) 미치도록 차리기 싫고 치우기 싫을 때만 외식을 한다.
부모님이 여전히 잘 드시고 그에 준하는 소화 기관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셔서 집에 언제나 먹을게 가득했다. 냉장고에 먹을게 없네.. 라고 말하면서도 팬에 불을 올리고 고기를 구워먹었다. 고기와 함께 먹을 생채소, 익힌채소들도 언제나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나 아빠의 부탁으로 장을 봐올 때 나는 ‘내돈내산'을 하고 그렇게 생색을 냈었다. 지금 나는 모든 식사를 ‘내돈내산'중이다. 찬장을 열면 햇반이 가득하고, 냉동식품이 가득하다. 자취용 냉장고는 냉장실과 냉동실의 크기가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냉장실은 물과 술, 달걀만 있고 냉동실은 온갖 냉동식품들이 가득하다.
오늘도 아침에 뭘 먹지 고민하며 배민을 한시간을 뒤적거리고 메뉴와 배달비를 계산하다 결국 햇반 하나에 달걀 두개를 풀어 달걀말이를 해먹었다. 저녁밥도 별일 없으면 똑같이 배민을 뒤적거리다가 찬장에 쌓여있는 사골우거지국을 데워먹겠지. 그마저도 싫다면 이번 달 배달 어플로 몇 번 주문했는지 확인하고 3번 이하면 양심의 죄책감을 덜 느끼며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것이다.
그리고 잔뜩 남은 음식을 보며 또 후회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