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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Jul 18. 2022

맥시멀리스트의 독립

집에서 독립한 건 나인가 지갑인가?

날 아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를 수납의 왕이라고 부른다.


정말 수납을 잘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집 곳곳엔 상상 이상의 물건들이 구석구석 잘 쌓여있다. 그렇다. 우리 집엔 정말 없는 게 없다.  그 많은 것들이 다 필수품이면 맥시멀리스트도 아니고, 작은 집도 그렇게 큰 고민사항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같은 사람이 그러하듯, 모든 물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천장에 LED 등이 있음에도 구석구석 조명이 놓여 있고, 뭔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에 어김없이 세워져 있는 인형들이 그 증거들이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집안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물건이 워낙 많다 보니 정리를 해도 정리를 한 느낌이 나지 않고 버려도 버린 것 같지도 않다. 점점 내가 아니라 물건이 사는 집으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나 엿봐야 한다. 인테리어 관련 어플들이나 글을 찾아봤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집을 유심히 지켜보며 (직접 본건 아니다. 사진이 공개된 집들을 본 것이다.) 지독한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먼저, 저들은 옷을 다 어디 보관하는 것일까? 이건 어느 집을 구경하든 간에 항상 궁금하다. 옷들은 다 어디 있지? 저 친구들은 겨울에 패딩을 입지 않는 것일까? 롱패딩을 입고 바로 옷장 안에 두는 걸까? 한 번 입은 옷들을 빨아서 넣어둔 옷들과 함께 옷장에 넣어두는 것일까? 나는 빤 옷과 안 빤 옷을 절대 같이 두지 않는다. 옷장엔 입지 않은 옷만 걸려 있고, 한 번 입은 옷은 모두 행거행. 겨울 코트는 매일 세탁하지 않으니 행거엔 언제나 빡빡하게 옷들이 걸려 있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들 그렇지 않은 걸까? 내 주변 친구들이야 옷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어디나 옷이 걸려있거나 옷장 밖에도 옷이 많이 걸려있는 것 같았는데, 저 사진 속의 저 집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사진과 영상 속의 삶이 그러하듯, 전부가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아무리 요리조리 둘러봐도 옷들이 많이 수납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을 보며 답변을 찾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다.


두 번째, 가방은 몇 개나 있는 걸까?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은 다 어디 보관하는 거지? 나는 바구니 하나에 가방에 자잘하게 넣어 다니는 것들을 넣어놨다가 가방을 바꿀 때 거기서 찾아들고나간다. 가방 없이 나갈 때도 거기서 필요한 것들만 주머니에 넣어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바구니의 물건들은 예쁘게 세워져 있지 않고 다들 누워있다. 뒤적거리기도 하고 그냥 와르르 쏟아 놓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쓰는 가방만 쓰는 습관 때문에, 나는 집에 있는 많은 가방들을 무조건 쓰기로 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다짐 이후로 가방을 더 자주 바게 되면서 바구니는 더 많은 것들로 채워지고 비워지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하고 가방이 수십 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패턴으로 가방을 쓰지만 옷과 마찬가지로 사용한 가방을 어디 바로 넣는 건 찝찝해서 여기저기 걸어두다 보니, 내 방 뭔가를 걸 수 있는 곳엔 거의 가방에 걸려있다.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정돈된 테이블 위를 보며 나는 또 궁금증에 빠진다. 사진 속의 테이블엔 예쁜 티팟은 있지만, 언제나 끼고 사는 충전기는 없어서 나를 또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옷과 가방은 없을 수 있다고 넘어가더라도 휴대폰 충전선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무선 충전기도 어딘가 연결되어 있을 텐데 연결되어있는 선은 보이지 않는다. 전선을 어찌나 잘 숨기고 사는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사진 속 테이블 위엔 노트북과 스피커가 있는데, 충전선이 없다. 와이파이로 충전되는 신기술이라도 있는데 나만 모르고 살았나?

물론 사진을 위한 일시적 장치임을 알지만 저 큰 사진 속에 콘센트 하나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부터 전선을 끌어오며 저걸 항상 숨기고 사는지, 그렇게 부지런한지. 궁금증은 점점 커진다.


집을 어지럽게 보이게 하지만 없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선들이다. 나도 저렇게 깔끔하게 살아야겠 다고 다짐하고 멀티탭과 전선을 숨겨보지만, 결국 살기 편한 방법을 선택해 수납장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멀티탭을 꺼내놓고 전선을 늘어 뜨리고 있다.


많은 SNS가 그렇듯 생활을 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도 우리 집 너무 더 지저분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집에 가보면 친구들은 굉장히 깔끔하게 잘 살고 있다. 머리카락은 나만 그렇게 빠지고 있고, 전선은 우리집에만 있는 것 같다.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욕심 많고 게으른 나임을 잘 안다. 알고 있지만, 인정하는 건 다른 문제고 인정했다고 해서 개선의 의지가 있느냐 역시도 다른 영역이다.


 나의 취향으로 집을 꾸미는 것은 독립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하다 못해 아무것도 들이지 않고 살겠다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자 다짐이다. 나 역시 심플하고 깔끔한 집이 나의 취향인 줄만 알았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테이블을 두고 태블릿 피씨를 세워 두고 커피를 마실 줄 알았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어울리는 집을 꿈꿨다. 필요한 것만 딱딱 적재적소에 있는 집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좁은 집에! 어두운 회색 이불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성이 그려진 러그를 올리는 순간, 꼭대기 층 웃풍을 피하기 위 해 난방 텐트를 설치한 그 순간(심지어 좋아하 는 공룡이 잔뜩 그려진 텐트) 나와 미니멀리스트는 헤어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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