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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Jan 27. 2024

힘들어요? 힘든 게 맞아요


두 번째 운동, 정말 추운 날이었다. 이럴 때 쓰려고 산 바라클라바가 아닌데, 감지 않은 머리를 바라클라바에 집어넣고 패딩 지퍼를 목 끝까지 채웠다. 해 뜨려면 한 시간도 더 남은 새벽. 길에는 나밖에 없었다. 약간의 쾌감과 지금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폼롤러에 몸을 뉘었다. 우리 집에도 장승처럼 서있는 친구였다. 다리를 푸는 이외의 용도로 쓴 적은 없었다. 왜냐면 너무 아팠으니까! 엉덩이나 팔사이에 끼우면 온갖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 있을 뿐인데 냉온탕을 오가는 듯하다.  헬스장에서도 근육을 말랑하게 만드는 폼롤러 사용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집에 있을 때처럼 어흑 아이고 어우 이런 소리가 났으나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냥 깊은 숨만 내쉴 뿐이었다.


오늘은 러닝머신을 타시죠.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말이었다.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3분 걷기 시작. 다리, 배, 어깨 근육 걸으면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서서히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은 빠른 걸음으로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나는 뛰기 시작했다. 요즘 헬스장은 영상도 나오던데, 신나는 노래도 틀어주던데, 잔잔한 피아노 소리만 울려 퍼지는 헬스장에 나는 소리는 나의 발소리와 숨소리뿐이었다. 물론 코치님의 잔소리도 함께였다.


힘들어서 약간 몸에 힘을  풀면 발이 끄는 소리가 나고 긴장을 하면 어깨가 올라간다. 한 발 한 발 똑같지 않은 나의 몸이었다. 러닝머신의 숫자 영어를 죄다 읽었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구구단도 외우고 구구단을 거꾸로 외우기도 했다. 그래도 2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힘드신가요?


코치님이 불쑥 말을 걸었다. 힘들지... 네, 힘들어요. 코치님은 내 답을 심드렁하게 들었다. 힘들죠. 그냥 힘들어도 참는 거예요. 뭐 없어요. 다들 힘들어요. 그래도 그냥 하는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뭔가, 이게 인생인가, 삶이랑 비슷하다.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발을 굴려 앞으로 나가는게...... 어쩌고 저쩌고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지만, 너무 힘들었다. 발이 끌리지 않게 신경 쓰기에도 너무 바빴다. 흐르는 땀도 무지막지 했다. 티셔츠는 다 젖었고 머리카락도 푹 젖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 날 러닝머신 위에 총 42분 동안 있었다. 처음 웜업 3분 쿨다운 2분 정도를 제외하면 30분 넘게 러닝머신 위에서 뛰었다. 러닝머신은 야외에 비해 뛰기 쉽다고 해도 내 의지 절반 코치님의 감시와 방관(?) 절반을 더해 러닝머신 위에 42분이나 있을 수 있었다. 마라톤을 준비할 때, 혼자 런데이를 뛸 때. 그 모든 순간을 다 합쳐서 연속으로 가장 오래 뛴 날이었다. 어떻게 10분을 뛰지? 어떻게 30분을 뛸 수 있는 몸을 만들지? 혼자 할 땐 걱정뿐이었던 시간이었는데, 나는 헬스장 등록 2번 만에 태어나서 가장 오래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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