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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May 05. 2024

상반기 마라톤 일정 오늘로 마감합니다

기분은 킵초게, 현실은 소라게. 

5시에 일어났다. 달릴 걱정에 잠을 설쳤다.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지 않지만 4~5시간 넘게 공복으로 있을 걱정에 억지로 입에 무언가를 우겨넣었다. 아침에 삼겹살이나 회를 먹는 것도 가능한 나였지만, 억지로 뭔가를 먹고 있자니 생각보다 잘 들어가지 않았다. 


달리기 시작 4개월만에 마주한 가장 큰 행사, 서울하프마라톤 아침이었다.


"전부 행선지가 같구만."

짐을 챙기고 지하철역을 향하는데 다들 행색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화문역을 향하는 듯 하다. 3주전 부산에서도 지하철에 다 같은 옷, 같은 가방이라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광화문역에 도착했을대, 부산과는 약간 다른(?)모습이 펼쳐졌다. 이건 지역의 차이라기보단 시작점 상황이 달라 생긴 풍경이긴하다. 


지하철역사내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역 도보 가장자리따라 자리잡은 사람들이 탈의(??)를 하기 시작했다. 탈의실이 협소했는지, 뭐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대기장소가 광화문광장이다보니 이른 시간 으슬으슬한 날씨에 밖에 나가지 않고 역사내에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푸는 것이다. 심심치않게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의 엉덩이를 보았다. 얼굴을 복도쪽으로 하고 엉덩이를 보는게 맞는건지, 엉덩이를 복도쪽으로 하고 옷 벗는 걸 보는게 맞는건진 모르겠다. 굳이 선택을 하자면 얼굴을 보는 편이 나을 듯 하다. 몸을 숙이면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내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아야하는거 아냐?!


2만명 정도의 되는 사람이 동시에 출발 할 수 없으니, 기록 또는 본인의 신청에 따라 그룹을 나누어 출발을 한다. 일반적으로 긴 코스+잘하는 사람들이 먼저 출발하고 짧은 코스+초보자가 마지막에 출발을 하는데 나는 10km 마지막 그룹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코치님과 함께 뛰었다. 코치님이 맨 뒤로 빠져서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뒤로 빠질 것도 없었다. 우리는 이미 맨 마지막이었다. 우리 뒤에는 경찰차밖에 없었다. 


페이스를 유지하다가 괜찮다싶으면 중간부터 속도를 올리자는 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나는 중간부터 속도를 올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투성이였다. 중간부터 쳐지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문제는 우리가 맨 뒤라서 쳐질 곳도 없었다. 


네명이서 열을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페이스와 자세를 확인하며 천천히 달렸다. 이렇게 천천히 달려도되는 걸까 생각했지만-지금와서 그 때를 떠올려보면- 초반에 힘이 있다고 속도를 냈다면 난 분명히 중간에 멈춰서 걷거나, 중간에 뻗었을 것이다. 


고비가 여러번 있었지만, 가장 인상깊게 남은 고비는 급수대였다. 파워에이드밖에 없던 그 급수대. 마시기 위해 속도를 늦췄는데, 그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곧, 이 느낌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다. 파워에이드로 끈끈해진 바닥에 신발이 들러붙은 것이다. 끈끈함을 밟은건 몇 발자국 되지도 않았지만 그 여운은 수십 미터동안 지속되었다. 내 신발은 초심자가 신기엔 꽤 좋은 신발이었고, 신발을 신기만 해도 추진력이 붙는다는 (?) 놀라운 신발이었지만 파워에이드를 밟은 이후로는 중력의 영향을 두 배는 받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멈추진 않았다. 지금 정말 멈추면 다신 못 뛴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쯤부터 잘 달리는 사람과 못 달리는 사람의 격차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스럽게도 뒷 그룹. 자세와 박자 두 가지를 모두 신경쓰며 갔지만 내 자세는 금방 무너졌고 표정도 일그러졌다. 


우여곡절 끝에 진입한 여의도. 진정한 빌런은 이곳에 있었다. 내가 달릴 때는 이미 도착하고 집에 가는 선두그룹 분들이 있었고, 인도에서 응원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 중 한 분이, "힘내세요! 이제 500미터 남았습니다! 화이팅 화이팅"하며 소리를 질렀다. 내 시계상은 아직 1km 가 더 남았는데? 무슨 말인 걸까? 이 때 내 시계를 보지 않고 마지막이니까 힘내자, 하고 페이스를 올렸다면 얼마 남지 않고 퍼졌을 것이다. 실제로 같이 뛰었던 분 중 가장 먼저 달렸던 분은 저 말에 힘이 조금 남아 페이스를 올렸다가 가도가도 끝나지 않는-마지막에 지치면 100미터가 1km처럼 느껴진다-거리에 지쳐 마지막 1~200미터를 남기고 체력이 끝났다는 기분을 받았다고했다. 


500미터 남았다고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반환점에 광안대교에서 느꼈던 두려움을 도착 지점에 거의 도착해서야 느꼈다. 대체 어디까지 가야 반환점이 나오는 걸까? 반환점까지 달려가면 다시 이만큼 와야한다는건데, 진짜 못 달릴 것 같은데 어쩌지?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유모차였다. 언제부턴가 같이 달리고 있던 유모차. 심지어 그냥 유모차도 아니고 쌍둥이 유모차였다! 체력이 떨어진 와중에도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엄마의 모습. 그 모습에 힘을 내  유모차의 바퀴만 보고 달린 듯 하다. 유모차의 바퀴가 심하게 흔들릴 때면 내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이 바퀴 굴러가듯 굴러가자, 나는 지금 달리는게 아니라 밀리는 힘에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달렸다.


결승전 들어왔을 때, 짜릿했다. 처음으로 10km를 한 번도 걷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이전보다 체력이 늘었는지 체력도 조금 남았다. 기분 좋았다. 



"힘들어요? 아픈데 있으신가요?"

"마음이 힘들고 아파요 ㅠㅠㅠ"


중간 중간 코치님이 우리의 상태를 체크했고, 같이 달리는 분의 진실되고 유쾌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혼자 달릴 땐 주변에서 화이팅을 외쳐도 손 들 힘도 없었는데, 함께 달리니 손도 흔들수 있었고 음악도 들렸다. 달리기는 혼자하는 것이라고하지만, 옆에서 같이 뛰는 분들 없인 정말 중간에 의지를 놓쳤을 것이다.


우리의 출발은 맨 마지막이었지만, 도착은 마지막이 아니었다. 마지막이어도 어떤가! 끝까지 해냈다는게 중요한거지. 


4월 첫 주 광안리 / 4월 마지막주 광화문을 끝으로 나의 상반기 마라톤 출전(?)은 막을 내렸다. 첫주 보다 기록은 6분 줄였고, 체력도 남겼다. 다음 마라톤은 11월이다. 이미 신청도 해놨다. 우리 팀원분들은(?) 풀코스가 목표인 것 같지만 난 지금보다 기록을 10분정도 줄이는 걸 목표로 할것이다.  이 성취감을 가지고 가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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