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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경 Apr 21. 2024

광안대교 위를 달리다

차가운 바람, 뜨거운 심장, 지친 두 다리


내가 이번에 참여한 마라톤의 이름은 '기브앤레이스' 벤츠 재단에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마라톤이다. 처음 알게 된건 2019년, 누군가 나에게 '대혜자 마라톤'이니 처음 참여하기 좋다고 추천해줬었다. 참여자에게 주는 물품도 좋은 편이고, 참가비 전액 세액공제, 그리고 공연까지 있는 마라톤 행사였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2019년 기브 앤 레이스 이후 첫 마라톤. 몇 년 만에 나온 마라톤도 기브 앤 레이스일 것이라는 건 생각하지도 못했다. 준비물은 심플했다. 큰 가방 안에 든 건 슬리퍼와 러닝벨트, 중간중간 먹다가 닫아 다시 넣을 수 있는 주스와 신분증이 다였다. 지하철은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고, 모두가 같은 가방 - 기념품으로 미리 제공된 가방만 맡길 수 있다-과 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친구 같았고 소풍 가는 날처럼 마음이 들떴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벡스코로 향하는 길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혼자 신청한 나는 조금 외롭고 멋쩍게 편의점에서 오렌지주스를 사서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부산에선 처음 나가본 마라톤이었는데, 정말 좋더라. 정말 좋다는 게, 마라톤도 그렇지만 외적인 부분도 그랬다. (아, 다른 곳이랑 비교를 할 순 없는 게 난 두 번 나간 마라톤이 전부 기브 앤 레이스다.) 일단 출발 장소가 벡스코라는 게 엄청났다. 공식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실내인 것이다. 화장실도 여유롭고 편의시설도 많아서 좋았다. 물론 출발 시간 30분 전쯤부터는 어느 화장실이든 간에 다 북새통이었지만.


걱정이 많은 나에게 걱정거리가 많은 마라톤이었다. 10km라는 거리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나갔을 땐 일반 길이었어서 사람들이 더우면 편의점에 들어가서 물을 마시거나, 급하게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광안대교! 코스의 대부분인 광안대교는 중간에 편의점도 화장실도 없다. 심지어 급수대도 설치를 못한다는 공지를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하는 거였던 걸까? 4월 중순을 넘어가면 더우니까? 처음 나갔었던 그때도 너무 덥다고(5월이었음) 정말 원성이 대단했었다. 중간에 뭔가를 처리해 줄 수 없으니 자연의 힘을 빌어보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끝나지 않는 오르막도 걱정이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코스만 보면 심플하지만 긴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으로 구성된 굉장히 힘든 코스니까.

나는 뒤처질 것을 대비해 중간쯤을 선택했고, 주변 사람들의 힘을 빌어 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다시 달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 최대한 뛰어보는 것을 목표로 달렸다. 오르막이니까, 2km만 달려도 목표달성이라고 생각했다. 시작은 무지하게 힘들었다. 끝나지 않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최대한 달려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광안대교 위를 달리는데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바다와 부산의 풍경. 자주 봐서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멈추고 여러 번 카메라를 들었다. 땀으로 샤워하고 온 얼굴은 새빨간 행색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셀카를 찍었다.


시작하자마자 톨게이트에서 올라가는 왼쪽 곡선도 오르막, 교량을 향해 달리는 오른쪽 곡선도 오르막이었다!

달리면서 알게된 사실은 진짜 문제는 시작 지점의 오르막이 아니라 10km 반환점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반환점이 다리 아래에 있는 줄 알았는데, 도로의 사정으로 광안대교 아랫지점을 찍고 다시 다리 위로 올라와서 반환점을 돌아가야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때가 정말 큰 고비였다. 반환점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는데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면서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럼 이걸 다 올라와야 하는데.....?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 거예요?

러닝벨트에 넣어둔 어린이용 사과주스는 내 체온에 따끈따끈해졌고 맛도 없었지만, 광안대교 위의 나에게 큰 힘이었다.


내려서 조금 들어가니, 부산에서 가장 벚꽃이 예쁘다는 아파트에는 여전히 벚꽃이 한창이었다. 기브 앤 레이스 두 번째 포토스폿이었다. 하지만 이때 나는 정말 멈추면 그대로 누울 것 같아 눈에만 담고 뛰었다. 여기서부턴 뛰었다기보단 거의 걸었던 것 같다. 부스터를 단 것 같다는 평을 듣는 내 신발은 부스터는커녕 중력의 영향을 두 배로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도착점이 보이고, 거기서부터 나는 드디어 다시 달리는 척을 시작했다. 뛰는 내내 못 받았던 전화를 다시 걸며 엄마를 찾았다. 오지마라고 했지만, 막상 엄마가 와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의 결과는.. 내 가슴에만 품어둘 것이다. 10km 중에 아마 단연코 맨 마지막 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검색을 하면서 재밌었던 건 코스가 8km도 있는데, 8km 중에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다 기록 생각하지도 않고 너무 즐거웠다. 또 하자! 이런 식으로 올렸지만 10km를 조금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나처럼 기록을 마음에만 품어보는 것이다. 이게 약간... 져서 받은 은메달과 이겨서 받은 동메달을 딴 기분 같은 것일까 생각을 했다.


그래도 마라톤은 정말 올림픽 정신으로 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기에 결승선을 밟은 것만으로도 박수받을만한 일이다. 하나 더 말하자면, 도착점은 광안리였고 메달은 간식 가방에 들어있는데 간식가방을 받기 위해 모래사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너무 고통이었다. 정말로! 이렇게 달리고 와서 모래를 헤치고 메딜을 받으러 가야 한다니! 지옥훈련 같은 기분. 하지만 남들보다 미치도록 체력이 약한 나만 그렇게 느낀 듯 모두의 표정이 좋았다. 정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국밥 한 그릇 시원하게 말아먹고 쉬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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