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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경 Nov 30. 2024

특별할게 있나요, 타이베이 / 한국인 인증(?)

한 번의 여행으로 타이베이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여행 이야기



도착 첫날, 요즘 영 확률이 낮다는 럭키드로우 여행지원금은 당연히 당첨되지 않았고,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타이베이로 향했다. 최근엔 숙박지원금이 훨씬 당첨확률이 높다고한다. 그런데 아무리 무계획적이라고해도 럭키드로우를 할 수 있는 3박이상으로 여행을 오면서 호텔을 예약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확률에 걸기에 숙박은 너무 도박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하나는 호텔 숙박이 아니라 기념품을 사는 데 쓸 수 있어 호텔에서 식사를 하거나 호텔 베이커리에서 쓰는 분들도 있다고한다. 다들 참 똑똑해.


머리색은 비슷해도 언어가 다른 곳은 첫 날 역시 긴장되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낯선 언어와 향에 감각이 곤두섰다. 타이베이에 도착한 첫 소감은 ‘습하다’였다. 습했다. 10월은 좀 덜 하다던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연결 통로에서 습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일기예보대로 비가 왔다. 나흘 내내 비 예보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잘 맞을 지는 몰랐지. 나는 외국의 일기예보를 믿지 않는 편이다. 꽤 예상대로 잘 맞춘다는 우리나라도 이지경인데 다른나라는 더 못 맞출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하지만 여행 첫날 타이베이 비가 온다는 예보는 정확했다.


그럼에도 못 맞춘 것은 있었으니 ‘이렇게 많이 올 지는 몰랐다’였다. 이렇게 부슬부슬, 가끔은 폭우처럼 내린 비의 양은 300미리.

한 손에 우산과 휴대폰,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밀며 나와 동생은 2km가 넘는 길을 호텔을 찾아 떠났다. 지하철역과 먼 곳에 호텔을 예약했다는건 이런 일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도 타이베이는 건물 1층이 아케이드마냥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우산을 오랜 시간 펼 필요는 없었다. 체크인은 3시. 우리가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12시쯤. 일단 배를 채워야했다.


나는 당연히 그 나라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나의 눈에 띌 만한 밥집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자만 가득한 노상의 가게에 들어갈 용기도 아직은 없었다. 말끔해 보이는 근처 또우화를 파는 곳으로 들어갔다. 또우화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순두부 디저트이다. 하지만 동생은 첫날부터 낯선 음식을 먹기엔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어 근처 예쁜 브런치 가게를 찾아갔다.


단언컨대, 타이베이에 도착하자마자 첫끼로 브런치 카페에 가서 5만원 태운 한국인 관광객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한자밖에 없는 메뉴판에 좌절했다가 갖다준 영어 메뉴판에 셰셰를 말하며 찬찬히 살폈다. 여기도 대면으로 주문을 받기보다는 큐알로 주문을 받았다. 관광객이 없는 동네에서 처음 만난 위기. 바로 옵션 선택이었다. 음식은 이름과 함께 사진이 친절하게 표시되어있었지만 선택 사항엔 영어가 없었다. 이럴 땐, 그냥 맨 위에 시키는 게 정답. 우리는 프렌치 토스트와 볼로네제 스타일의 무언가를 시켰다.

우리는 음식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그 옵션 사항은 계란의 익힘 정도였다는 것을. 볼로네제 스타일의 무언가는 에그 인 헬과 비슷했고, 그 안의 달걀은 완벽하게 익은 상태로 나왔다. 삶은 달걀을 넣은 듯 했다. 계란 한자를 읽을 줄 알았다면 반이라는 글자를 찾았을텐데, 맛있지만 아쉬웠다. 한국어 제공을 하지 않는 곳, 그리고 현지인들과 가끔 대화를 하며 기억 깊숙이 잠겨있던 중국어가 하나씩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 가게에서 떠오른 글자는 계란 (鸡蛋)이었다. 식사는 내가 아는 맛있음이었고, 의외로 커피가 맛있어 커피 맛에 감탄하며 첫끼를 훌륭하게 마쳤다. 커피 2잔, 프렌치 토스트, 에그인헬 이렇게 시키고 결제한 금액은 5만원이었다. 타이베이 3박 4일 일정 중 가장 비싼 식사 top 3 중 하나였다.


배가 불렀고,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우리는 동네 탐방을 나섰다. 한층 심해진 비와 바람을 뚫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여기가 구글 맵으로 어디쯤이고 걸어 다니는데 무리가 없겠다고 파악해가며 티엔무의 깔끔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타이베이에는 예쁜 스타벅스로 바오안점이 유명한데,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건물 하나를 통으로 쓰고 있는 티엔위(tianyu)점이 유명하다. 티엔무 스타벅스는 다른 곳이니 영어를 잘 확인하고 가야한다. 지도상으로는 호텔과 꽤 멀게 느껴졌는데 생각보다 멀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고 우리는 호텔을 향했다. 체크인 시간까지 애매하게 20분쯤 남아 우리는 또 다른 스타벅스인 티엔무 스타벅스에 들어가 잠시 앉았다. 타이베이에만 있는 음료를 찾으며 자몽허니아리산우롱차를 시켰다. 우리나라의 인기 음료 자허블의 우롱차 버전.

달달한 음료라 그런가? 음료 커스텀이 굉장히 많았다. 사이즈는 톨. 당도는 추천 당도로. 이까지 결정하고 나니 얼음의 양을 물어봤다. 이젠 중국 여행 때, 지인 한 분이 ‘얼음, 나는 한국인입니다.’만 외치면 된다고 한자를 가르쳐줘서 기억하고 있던 ‘얼음’의 중국어. 동생과 나는 많이 넣어달라는 의미로 몰(more)!을 외쳤다. 직원분이 의아한듯 More? 하고 물었다. 우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워먼쓰 항궈러’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직원은 이제 이해가 된 다는 듯, 프롬 코리아? 라고 다시 묻더니 뭐가 더 필요하냐고 물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추천했다. 한국인은,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듯.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미 혈중 카페인 농도가 높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거절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지 않으니 오히려 직원분이 놀란 듯 했다.


스타벅스에서 처음으로 마신 자몽 우롱차는 놀랍도록 맛있었다. 자허블보다 훨씬 내 입에 맞았다. 나는 이날 이후 우롱차의 매력에 빠져 커피가 아니라 우롱차만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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