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풍경보다 감동적이고 디저트보다 달콤한 그것. 친절
체크인까지 마치고 드디어 시작하는 첫 일정. 나는 첫 일정을 시작하면서 타이베이와 사랑에 빠졌다. 여행하기에 날씨도, 교통도 최악이었지만 좋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만날 수 있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타이베이 식물원. Xiaonanmen(小南門) 역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향했다. 우리의 호텔은 지하철역 사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게 약 2km 정도씩 떨어져 있었다. 그나마 가까운 역이었던 Mingde(明德) 역은 상대적으로 골목골목 움직어야했고, 조금 먼 역이었던 Zhishan(芝山) 역은 큰길을 인접하고 있어 버스를 타기에 좀 더 용이했다. 첫날 여러시도를 해본 끝에 우리는 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Zhishan(芝山) 역을 좀 더 자주 이용했다.
아직은 첫날이니까, 지하철역 두 군데 중 어디가 더 괜찮은 지 알아야 하기에 밍더역으로 향했다. 밍더역을 가는 길은 험난했다. 티엔무를 가로지르는 작은 천을 따라가야 했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호텔 들어가기 전 이 천을 건너며 폭에 비해 유속이 살벌하다고 느꼈는데, 이 속도가 우리에겐 바람으로 다 느껴졌다. 우산을 들고 걷는 게 힘들었다. 우산은 계속 뒤집혔다. 비가 부슬부슬 비가 계속 내렸기 때문에 우산을 안 쓸 수도 없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바람이 강해도 너무 강했다. 비 예보에 가지고 간 우산은 맥을 못 추고 계속 뒤집어졌다. 뒤집힌 우산을 바로 펴는 것에도 한참이 걸렸다. 5분만 걸으면 되니까 비를 맞자고 생각하고 우산을 접으려고 했지만 바람에 우산을 접는 것도 힘들었다. 접다가 우산 살이 박살 나거나 휠 것만 같았다. 평소 우산살의 수를 중요하게 여겨 살의 개수가 적은 우산을 선호하지 않는데, 여행이기에 1g이라도 가벼운 우산을 들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살이 적은 우산을 챙긴 게 화근이었다. 우산이 찢길 것 같아 우산 천의 면에 손바닥을 대거나 천 부분의 끝을 손으로 잡아가며 걸었다.
어릴 때 읽었던 ‘해와 바람’이라는 동화를 기억하는지? 내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 30분은 바람이 도전 중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뭐든 날려버리겠다는 기세로 바람이 불 리가 없었다. 30미터도 안 되는 다리가 300미터처럼 느껴졌다. 온몸으로 비를 맞고 감당할 수 없는 우산을 들고 나는 힘겹게 다리를 건넜다.
와, 바람 미친 거 아냐?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눈앞에 우산 하나가 나타났다. 은발의 멋쟁이 할아버지였다. 나에게 뭐라고 뭐라고 말하면서 우산을 쥐어주셨다. 눈앞에 정자가 하나 보였고 거기 어르신들이 몇 분 모여 계셨는데, 거기 앉아서 보시다가 우산을 들고 나오신 듯했다. 아직 중국어 패치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이라 괜찮다는 말이 중국어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를 연신 외쳤지만 이미 할아버지는 커이커이, 메이쓰 메이쓰(괜찮아라는 뜻)를 외치며 원래 계셨던 정자로 돌아가셨다. 인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동생은 내가 인사를 하다가 땅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정말 그만큼 감사했다. 우산은 무겁고 튼튼했다. 든든한 갑옷처럼 느껴졌다. 이 우산이 이 날의 우리를 살렸다. 동생 우산도 변변찮았기 때문에 장우산을 함께 쓰고 한 사람은 길을 찾고 한 사람은 우산을 들고 시먼 일대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내내, 인류애 풀 충전이야, 타이베이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낡았지만 튼튼한 우산은 최고의 기념품이었다. 대만 사람들은 참 친절해라는 말을 몸으로 느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감상과 기념품이 있을까? 이날 나에게 주신 친절은 그 어떤 풍경보다 감동적이었고 디저트보다 달콤했다.
이 날 받은 우산은 한국까지 같이 와 내 우산 꽂이에 잘 꽂혀있다. 1절만 해.라고 누군가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우산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 우산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