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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경 Dec 05. 2024

특별할게 있나요, 타이베이/컨텐츠의 힘을 유지하는 법

한 번의 여행으로 타이베이와 사랑에 빠진 사람

단수이, 타이베이에서 조금 떨어진 항구도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밀.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한국에선 2008년에 개봉했고, 관객수를 약 15만명 동원했지만 희한하게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영화다. 정말 신기하지. 15만명밖에 안 봤지만 이렇게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동생과 나도 이 영화로 단수이를 알게 되어 이 곳을 향했다. 일몰이 멋진 곳이라고해서 일부러 오후로 잡았다. 단수이는 빨간 호선으로 마지막역. 타이베이 중심부에서 꽤 멀기 때문에 보통 단수이에서 내려오며 타이베이 최대의 야시장이라는 스린 야시장을 들르는 동선으로 일정을 짠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먼저, 단수이에 대해 처음 느낀 점을 말하자면 ‘사람 진짜 많다’였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3박 4일동안 사람이 가장 많았던 곳을 생각하자면 단연 이 날 오후 일정으로 잡았던 스린 야시장과 단수이였다. 지하철역에서 내릴 때도 사람이 바글바글, 내려서 버스를 타고 홍마오청을 가는 길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홍마오청, 진리대학교, 소백궁을 연이어 보는 동선. 모두가 다르지 않은지 다들 버스를 타고 홍마오청을 향했다. 어디에서 내려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모두 같은 역에서 내려서 같은 곳을 향하니까. 버스 역 이름은 <Fort San Domingo> 다소 스페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페인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곳이었다.

우리도 나름 이 날 드레스코드를 맞춘다고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는데 아예 교복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로고가 다 같길래 어디서 빌려주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에서 사왔다고! 그러고보니 막상 다들 입고 돌아다니는 교복의 스타일은 말할 수 없는 비밀 보다는 상견니에 가깝다.


이 날 뭐에 홀렸는지 모르겠다. 바로 뒤에 진리대학교와 소백궁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홍마오청만 보고 해변으로 내려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습도에 정신이 없었던 듯 하다. 해는 나지 않았지만 묘하게 흐린 날씨에 사진을 찍는 내내 땀범벅이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걸 정말 좋아하는 나지만, 막상 사진만을 찍기 위해 돌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진리대학교를 가지 않은 건 조금 아쉽긴 했다.


해변을 따라 걷다 일몰을 보기 위해 스타벅스 앞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뷰는 볼 수 없었다. 너무 흐려 해가 어딨는 지도 확인 할 수 없는 날씨였다. 그림 그리는 사람과 똑똑한 보더콜리만 30분 정도 구경하다가 다시 단수이 역으로 향했다. 단수이도 역으로 걸어오는 길에 상점이 잘 되어있다고하여 구경을 하며 단수이역까지 걸어왔다. 단수이 야시장은 카스테라, 오징어튀김 등이 유명한데 우리는 스린 야시장을 갈 예정이라 먹거리는 아쉬움으로 남겨놨다. 해가 이미 진 후였는데도 단수이 역은 아까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그저 관광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불멸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한 모양이다.


 나는 단수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2007년에 나온 영화인데, 아직도 다들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를 하고 그 후로도 이만한 컨텐츠가 나오지 않았다고. 이 영화의 힘이 대단하면서도 여전히 여기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고. 이 다음의 이야기가 계속 나와 단수이에 이야기를 불어넣어야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대로이기에 힘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촬영지는 영화가 개봉한지 60년이 되었는데도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이 찾는다. 그대로이기에 계속 사랑을 받는 것이다. 배우들과 촬영 기술은 변했지만 촬영지와 음악은 오래 남아 계속 기억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컨텐츠는 새롭고 재밌는 것이 끊임없이 나온 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러기에 꾸준하게 찾고 싶은 게 적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적게 변하는 건 공간과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패션과 사람은 너무 쉽게 바뀌어서 연속성이 떨어진다. 이 점이 나는 항상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러브레터를 보고 오타루를 찾고 말할수 없는 비밀을 보고 단수이를 찾는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중 당장 이 드라마, 이 영화를 봤으니 어디 가봐야지! 하고 머리를 스치는 곳이 거의 없다. -물론 이건 내가 내국인 관점이기에 다를 수도 있다-. 도깨비에 나온 주문진 그리고.. 그리고?  아마, 내가 단수이를 다시 오는 날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얘기할 것 같다. 안 본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라고 이야기도 할 듯 하고. 문화의 힘이 별건가. 10년 20년이 지난 후에도 또 가고싶고 또 보고싶은 걸 만들어 내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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