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경 Dec 12. 2024

특별할게 있나요, 타이베이 / 목욕탕과 온천 그 어드메

한 번의 여행으로 타이베이와 사랑에 빠진 사람

새벽, 커튼을 걷자마자 눈앞에 본건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주유소 풍선인형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야자수였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온천 근처 대학은 오전에 등교가 보류인데, 온천이 문을 열었을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온천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운영해 온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 당연히 걱정되는 수밖에.


수십 년 동안 이보다 더 한 날씨도 견뎠으니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이렇게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등교와 출근에 대해서 방송을 하는데 안 할 수도 있다.라는 다른 의견이 아침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호텔 직원에게 전화를 부탁했지만 영업 전이라 전화는 받지 않았다. 호텔 직원이 우리에게 전화번호를 건넸지만, 인터넷만 되는 유심을 샀기에 의미가 없었다. 가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말지 뭐. 그러자고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은 것이니까.


구글 맵상의 버스는 올 기약이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구글맵을 뒤로한 어제 깐 버스 어플에 의존하여 20분 정도 떨어진 온천을 향했다. 관광객이 없는 곳의 버스 노선은 영어도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내려야 하는 곳의 지명엔 숫자가 들어가 숫자로 도착지를 알 수 있었다. 온천은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고, 버스가 산을 향하자마자 비와 바람이 다시 시작되었다. 분명 일기예보엔 하루종일 맑다고 되어있어 우산을 들고 오지 않아 조금 당황했다.


입고 간 옷을 머리에 쓰고 온천을 향했다. 온천 입구에는 사람인지 동상인지모를 빨간 옷을 입은 할머니가 있었다. 온천 초입에 도착하자 크게 엑스를 표시하며 메이쓰 메이쓰!라고 말하셨다. 영업을 하지 않는구나!  나 역시 머리 위로 엑스를 그리며 메이쓰?라고 묻자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망하게 서 있는 도로변을 따라 온천으로 추측되는 곳들의 간판이 보였다. 이 중 문 연 곳 하나도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처음 가고자 하는 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향했다. 그런데 출발을 하자마자 간판이 같은, 다른 건물은 영업 중이었다. 추측하건대 관광객들이나 자주 오지 않는 분들이 오는 야외, 프라이빗 온천은 문을 닫았고 고인 물들이 가는 공용탕은 연 듯했다. 온천은 대만달러로 200. 싸진 않았다.


정말 처음 오는 사람임을 온몸으로 티를 내며 계산 후에도 얼을 타고 있자 카운터에 앉아계셨던 분이 가야 할 곳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그 온천 나잇대를 기준으로 '젊은, 외국인'이 오자, 다른 직원들이 반갑게 곤니찌와!라고 인사를 건넨다. 거기서 대충 눈치챘다. 여기 정말 한국인 없는 곳이구나. 사실 중국어보다 일본어가 좀 더 익숙해 상대적으로 일본어로 말하고 듣는 게 편하지만, 외국에선 일본어로 누군가 말을 걸면 못 알아듣는 척을 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중국어로 어느 나라에서 왔냐 물으시는 듯했다. 사실 이건 완전히 알아들은 건 아니고 국 (国, gou)를 알아들어 아, 국적을 묻는구나 싶어. 한국인이라 답했다. 아는 한국어는 없으셨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으셨다.


온천 안은 간단했다. 작은 탈의실과 우리나라 목욕탕 같은 샤워기 대여섯 개, 그리고 탕 세 개 정도가 끝이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으로 펼쳐지는 양명산... 타이베이 타워가 보인다는 후기가 있었는데, 정말 타이베이 타워가 보일법했다. 수건만 챙겨가면 된다길래 수건만 달랑 챙겨간 동생과 나. 샤워기 앞에 앉긴 앉았는데 뭐가 바디워시고 뭐가 샴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통을 들고 한참을 읽다가. 바디랭귀지로 물어보니 어르신들이 뭐가 뭔지 가르쳐주셨다.

 

온천은, 꽤 낭만적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창 밖 풍경. 바람과 나뭇잎은 고스란히 온천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살짝 차가운 기온에 온천에 들어왔다 나왔다를 하며 땀을 식혔다. 한국처럼 탕 바닥엔 지압 시설이 작게 있기도 했고 물을 맞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목욕탕이 아니라 온천이라 오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냥 목욕탕처럼 이곳저곳을 오고 가며 온천을 즐겼다. 유황온천이라고 들었는데 유황의 냄새가 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람에 냄새가 빨리 흩날려서 나지 않는 것이었다. 호텔에 갈 때쯤엔 바람이 잦아들었는데 바람이 덜 불자마자 기가 막히게 유황냄새가 올라왔다.


한국과 다른 포인트를 말하자면, 먼저 창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양명산의 풍경이 펼쳐졌는데, 앞이 바로 절벽이고 산새가 깊어 여기서도 보이는 건 풀밖에 없고 탕 안이 보일만한 포인트도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바람이 시원해 땀을 식히면서 온천을 마음껏 즐겼다.  

산에서, 문을 열고 있다 보니 필연적으로 벌레가 있다. 엄청나게 큰 벌레나 도시에서 볼 법한 종을 봤다면 위생에 대해 의문이 들었겠으나 한 시간 정도 있으면서 봤던 건 개미 한 마리였다. 이 정도야 낭만이라고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고인 물들 파티다 보니, 외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곳과 달리 사물함 이용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사실 외부 관광객들 이용하는 곳도 그냥 밖에 두고 쓰면 되다는 내용을 보긴 했으나,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 사물함엔 동전을 넣는 곳도 있고, 열쇠도 있었지만 우리가 사물함 이용료를 내려고 돈을 주섬주섬 꺼내자 우리를 탕까지 안내해 주신 분이 그냥 문을 탁 닫으면서 그냥 쓰라고 하셨다. 희한하네,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내지 않고 자유롭게 열고 닫으면서 쓰고 있었다. 대만이라는 나라도 개인 물건에 대한 믿음의 벨트가 강한 듯했다. 자신의 텀블러를 들고 와서 물을 마시는 것도 인상 깊었다. 우리도 시원한 차를 한가득 가지고 왔으면 한참 더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지 우리가 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자 할머니들 몇몇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알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한국인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최대한 안타가운 표정으로 한국인이라고 말을 하자 깜짝 놀란 듯하더니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도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하니 그분 역시 안타까워했다. 뭐라고 말을 거셨던 걸까? 중국어를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 올걸. 짧은 중국어 실력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온천이라고 하기엔 다소 작은 목욕탕 같은 곳이었지만, 정말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한 번밖에 가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아쉬울 정도로. 타이베이 여행은 많은 곳들이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엔 꼭 온천을 하면서 타이베이 타워를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