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 봤어.
타이베이에는 그들이 자랑하는 엄청난 박물관이 있다. 국립 고궁 박물원. 어차피 다 보지 못하고 나온다면 알짜만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향했다. 주어진 시간은 2시간이었고 둘러보고 괜찮은 관만 신중하게 볼 것. 고궁박물관의 우리가 생각한 알짜도 모두 생각한 그것 1. 동파육 2. 옥배추.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주저 없이 동파육을 향해 3층으로 올라갔다. 전시를 본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천천히 2시간을 걷고 나면 이상하게 허리가 아프다. 예전 루브르 박물관을 해설사를 끼고 봤었는데 그때 가이드님께서 루브르 가이드 종이를 하나씩 나눠주셨다. 의아해하니 천천히 걷는 건 생각보다 많이 지치니, 앉을 수 있을 때 앉으라고 방석의 용도로 나눠주신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앉는 것에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앉을 시간도 없는 타이베이 박물원! 3층에 가서 동파육을 봤다.
와 진짜 고기 같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동파육 이외에 상아로 만든 구 옥으로 만든 그릇 등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한 공예품이 과거 중국의 공예 수준을 엿볼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좋아하는 회화관을 들렸는데 역시 재밌었다. 서양의 미술들을 보다 보면 성경을 몰라 담긴 의미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어 그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올 때가 많다. 그런데 참 재밌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많았다. 이게 아시아를, 정확히는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정서라는 것일까? 불교에는 약하지만 많은 매체를 통해 익혀둔 서유기도 어설프게 알고 있는 제자백가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꽤 유익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2층을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살펴보다 정신을 차리고 옥배추를 향했다. 옥배추는 꼭꼭 숨겨져 있었다. 동파육은 꽤 여유롭게 봤는데 옥배추는 숨겨져 있어서 그런지 앞이 아비규환이었다. 뭘 하는 건지 큰 소리로 떠들며 자리를 비키지 않는 일본인들, 유리에 카메라를 바짝 붙인 채 틈을 안 주는 중국인들을 두고, 누구보다 새치기를 잘하며 맨 앞으로 가서 옥배추를 구경했다. 귀뚜라미까지 올라가 있는 게 정말 대단했다. 반짝반짝 빛 나는 것이 정말 우리 집 가보라며 숨겨둘 만한 세공이었다.
큰 전시를 봤으니, 작은 전시를 보야지. 상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개인전이 쑹산에서 진행 중이라 급하게 쑹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타이베이 시청역이었고 종점-종점이라 버스에서 푹 자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림 20~30점 정도가 있는 작은 전시였다. 인스타로 보며 꽤 좋아했던 작가라 직접 보니 그림의 에너지가 좋았다. 활력이 넘치는 그림은 아니지만 특유의 로우파이(low – fi)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던 엽서 두 장을 들고 나왔다. 입장할 때 받은 MD 할인권으로 구매하니 기념품처럼 무료로 들고 나온 기분이었다.
얼레벌레 푸본 뮤지엄도 지나며 어떤 전시를 하고 있나 슬쩍 구경을 했다. 푸본 뮤지엄에선 반고흐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반고흐라니 너무 흥미로웠지만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 중인–지금 기준으로- 반고흐전과 같은 전시 같아 관람은 하지 않았다.
먹는 여행도 너무 좋아하지만, 나는 이야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반나절 전시회 투어로 깨달았다. 관광지는 무시하고 매일매일 미술관 박물관만 가는 것도 가능하다. 예술에 조예는 없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낄낄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하고 빛의 방향이, 원근법이, 이런 식으로 보는 건 포기했다. 아무리 때려 넣어도 되지 않는다.
요즘은 전시를 보는 방법은 1. 내 맘대로 해석하기 2. 이 중에 딱 하나만 우리 집에 둔다면 뭘 둘까 3. 이 그림이 인스타에 업로드할 단 한 장의 사진이라면 뭘 넣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을 돌려가며 전시를 즐긴다.
대만 고궁박물원은 1+2+3의 방법을 모두 즐기기 좋았고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전은 2번의 방법으로 보기에 좋았다. 푸본미술관과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은 일정상 가지 못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전시를 봤을 때 생경한 작가들이 전시 중이었다. 나라마다 그 나라의 색채가 진하게 살아있는 전시를 볼 때마다 항상 호기심시 생기지만, 유명하지 않을 때 허들이 생기곤 한다. 그래도 시립인데 내가 모를 뿐 유명할 거야. 이런 생각을 하지만 쉽게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작가들을 궁금해한다. 어떤 방법이 그 전시엔 어울릴까? 작품 외적인 것들을 뒤로한 채 온전히 작품만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오길 나 자신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