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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y 24. 2024

손톱은 물어뜯는 게 편해


Prologue.



서른에 밝히기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나는 손톱깎이를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분명 사람들은 조그만 쇳덩이로 또각또각 손톱을 네모나고 동그랗게 잘도 깎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쇳덩이를 들기만 하면 힘과 각도를 조절하지 못해 손톱을 그대로 날려버리고 말 거라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애인인 '건'의 권유에 못 이겨 손톱깎이를 붙잡는다. 손톱깎이로 손톱을 조금 끊어내는 일은 가까스로 성공하지만 다음이 문제다. 어떻게 반대편 손톱까지 오차 없이 깎을 수 있는지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결국 치아를 이용해 손톱깎이가 닿은 흔적의 틈을 붙잡고 잘근잘근 씹는다. 손가락을 입 안에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 손톱을 물어뜯을 때는 얼마만큼의 힘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적어도 이십 년은 혼자 씹으며 익혔다. 나는 역시나 이 방법이 제일 편하다.


심리 상담을 받던 한때, 선생님이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사고가 들 때마다 '또 내가 부정적인 쪽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기 위해서 그 사고방식에 이름을 붙이자고. 흔쾌히 알겠다고 답했지만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난감했다. '우울이'는 말할 때마다 우울해져서 반려당하고, 눈물방울에서 힌트를 얻어 '방울이'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방울이는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생각하고 싶어질 것 같다는 이유로 반려당했다. 할 수 없이 지긋지긋해서 마음 한편으로는 언제나 떼어놓고 싶은 손톱을 입 밖으로 꺼냈다.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생에도 안 좋다는 걸 알지만, 계속해서 물어뜯게 되는 손톱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감탄을 했다. 손톱깎이라는 깨끗한 신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러니까 긍정과 낙관이 사는데 더 평온함을 가져다주니 그 사고를 돌려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렵고 번거로워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가게 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흐름과 딱 맞았다.


오랜 독자로 만나 어쩌다 애인으로 발전한 '건'은 사고만 봤을 때 나와 정반대의 결을 지닌 사람이다. 낙관하는 게 당연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게 평범하고, 긍정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구태여 안 좋은 사건 안에서도 좋았던 점을 꼽는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과 연애하는 일이 답답했다. 좋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면 우선 왜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파고들어야 하는데 건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벌어진 일을 수습할 수 없다면 그다음에는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그러지 말아야겠다!" 넘어서는 이번에 어쩔 수 없이 속상하고 기분 나쁜 일이 벌어졌으니 다음번에는 지금보다 더욱 기분 좋은 일이 벌어져 상쇄할 거라고 긍정한다. 이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고백하면, 나는 그 사고가 못 미더웠다. 자기 합리화에 못 이겨 억지 긍정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또는 연애 초반에 흔히 하곤 하는 내숭이나 이미지 메이킹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일 년을 넘기고 이 년이 되면서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건은 손톱을 깎지 못한다면 홀로 영상을 보면서 손톱깎이로 손톱 깎는 법을 익힐 사람이다.


에세이를 적고 브런치에 올리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연료가 모두 소진되어서 더는 에세이스트로 살아갈 수 없는 게 아닐까. 남들이 칭송하는 고향에 대한 애증도 썼고,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관도 썼고, 가족을 다룬 이야기도 썼고, 다채로운 취미로 내가 싫어질 때 처방전을 내리는 방법도 썼다. 여기 올리지 않은 글의 분야라고는 이제 커리어뿐인데, 자그마치 칠 년 가까이 일상의 소소한 에세이를 올린 내가 업에 관한 통찰을 쓰기란 결이 맞지 않아서 꽤 큰 고민을 앓았다. 그러다 문득 매 저녁을 함께 먹는 애인 '건'이 떠올랐고, 건에게 연애 에세이를 쓰라고 독촉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쓰면 되지 않겠냐는 다짐을 늦은 밤에 했다. 그 생각까지 미치자 에세이스트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쓸만한 이야기는 언제나 주변에 널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애 에세이를 쓴 건 어렴풋이 계산해도 삼 년이나 넘게 지났다. 전 연인이던 그와 헤어지고 나서는 온라인 곳곳에 흩뿌려진 모든 글을 지우기 바빴다. 심지어 그때는 애인의 이름을 넣은 호칭도 짓지 않았다. 그저 그는 애인일 뿐이었다. 처음으로 건이라는 존재를 밝히면서, 힘이 닿는 데까지 연재를 하며 나와 같은 사람을 찾고 싶다.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합리화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 낙관하는 사람을 보면 어깨를 붙잡고 현실로 돌아와 좋지 않은 면을 면밀하게 보라고 소리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연재물을 건넨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 주제를 가지고 진득하게 글을 쓰는 것이라 내심 기대된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어느 독자에게도 새로울 이야기가 모였다. 내게 이런 모습이나 사건이 있었는지 깜짝 놀랄 만한 에피소드가 몇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후일담

건은 삐뚤빼뚤한 내 손톱을 가만 보다가 결국 이번에 '전동 손톱깎이'를 선물로 줬다. 손톱만 갖다 대면 자동으로 손톱이 깎이는 기계였다. 직접 어떻게 깎는지 보여주는데, 그 작은 날이 내 손톱을 몽땅 뜯어버릴 것만 같아서 고맙다고 웃음만 지었다. 건 몰래 곧 당근에 팔아버릴까 고민하다가 언젠가 손톱깎이를 쓸 나를 위해 구석에 두었다. 이 연재가 마무리될 시점에는 이 신문물을 이용한 후기를 후일담으로 가져오면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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