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처녀 성장 소설 <유니스 다이어리>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코로나19 백신을 기다리다 거의 마지막 차례로 1차 백신을 맞은 오늘. 주변 가족들 중 제일 꼴찌로 맞지만, 온갖 병치레를 하고 있는 가족들이 다들 별 탈 없이 맞아 그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접종 당일이 되니 살짝 긴장이 되어 집을 좀 정리해놓고 나오긴 했다.
2시 접종 5분 전, 예약한 이비인후과에 도착했다. 3명의 의사가 각기 다른 접수창구를 한 공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병원이라 그런지, 명절 전 북적거리는 마트가 연상될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로비의 많은 의자가 꽉 차 앉을 자리도 없이 다닥다닥 모두가 붙어 앉아 있었다.
접수창구에는 몰려드는 업무와 쌓인 피로 때문인지 화를 참기는 하지만 짜증이 제대로 묻어 나오는 말투의 간호사가 답답한 듯 반복적인 설명을 하고 있었고, 상대의 말은 듣지도 않으며 아이를 봐주러 빨리 들어가야 하니 속히 자기 약부터 처리해 달라고 우기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백신을 맞고 열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당황하며 다가오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아 순서를 양보해 기다리고 있으니, 짜증 섞인 큰 소리를 청년 너머로 던지며 백신을 맞으러 왔는지를 나에게 묻는 간호사.
내가 저런 소리를 식당이나 다른 매장에서 들었더라면 “왜 그렇게 화를 내며 말하세요?” 하고 바로 물어봤을 듯한 톤이었다만… 그간 병원과 약국을 운영하며 코로나 상황을 경험하는 지인들의 답답함과 힘든 상황이 묻어나는 글을 많이 봤었기에, 조금 더 상냥하게 답하며 빨리 움직여줬다.
예약 시간이 2시였는데 30분이 지나도 접종이 시작되지 않았다. 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았으니 다들 시간을 잘 지켜와 쫙 몰렸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35분쯤 지나니 사람이 많이 빠지며 내 이름도 불려 진료실 앞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맞은편 방 침대 위에 열이 오른다는 청년이 누워있는 게 얼핏 보였다. 지나는 간호사 둘이 “열이 좀 높지 않아?” 하며 살짝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순간 쫄리기도 했다.
그나마 ‘맞기 전에 백신 종류와 유통기한을 다시 확인하면 기분 나빠할까?’ 고민하며 왔는데, 유통기한과 백신 종류 안내문이 적혀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고.
내 차례가 되었다. 힘든 노고에 대한 최소한의 마음의 표현이라도 하고 싶어 "안녕하세요~" 환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친절한 말투로 주변에 지인들은 많이 맞았는지, 부작용들은 없는지도 물어봐 주셨다. 평소 다른 과 치료 갔을 때보다 더 많은 말씀을 친절히 해주시는 선생님께 난 며칠 전 부작용에 고생을 하던 친구의 사례를 짧게 이야기하고 “힘드시겠어요, 정말 수고가 많으세요~”라는 인사를 덧붙였다. 그랬더니 선생님 왈,
“괜찮아요~ 원래 손님도 없었는데요 뭐~”
하시길래 순간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환자도 아니고 손님이라고 편하게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 뭔가 배달이 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쁨을 즐기는 수더분한 치킨집 사장님 같기도, 오쿠다 히데오 소설 속 의사 이라부를 만난 것 같기도 했다.
15분 대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의사 선생님은 반복되는 백신 접종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그들이 좀 더 안심할 수 있도록 성실히 대답하며 주사를 놔주셨다. 대충 빨리 빨리 지나갈 법도 했다만, 환자들에겐 처음인 이 시간에 대해 최대한 친절하셨다.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벼운 유머 감각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라면 처음 가보는 이런 길도 좀 더 힘내서 나아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들 처음 겪어보는 상황들 앞에 우왕좌왕하는 요즘.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우리는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바쁘고, 핑계 대기에 바쁘고, 각자의 불평불만을 더욱 높이기에 바쁘다.
부디 굽이 굽이 끝이 보이지 않는 낯선 그 길 위에서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길 바래본다. 두려움에 날이 선 서로에게 좀 더 안심되는 동무가 되어줄 수 있길 바래본다. 마침내 그 길의 끝에서 함께 웃을 수 있도록.
2차 접종이 1주일 당겨졌다는 안내를 받았음에도 병원을 나가려는 순간, 바뀐 날짜가 아닌 변경 전 날짜의 2차 접종 알림톡이 왔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이전 보단 훨씬 친절해진 목소리로 그 알림은 무시하면 된다고 답해주시는 간호사님. 2시 55분, 북적대던 병원이 거짓말처럼 한산해졌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곧 사람들이 다시 몰려와 난리통이 되겠지만, 잠깐이라도 이분들 몸과 마음에 휴식이 허락되어 얼른 충전되시길 잠시 기도했다. 이 난리통의 코로나 상황 또한 지나가길, 짧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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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말아요> by 유니스 황 from 유니스 황 4집 앨범 exhale
https://www.youtube.com/watch?v=9D6Fty6RX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