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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4. 2023

떠나는 이야기 #1

봄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이별

' 6월 6일에 입원한다 '


오월 햇살이 따뜻한 낮이었고, 회사를 쉬는 날이었고, 직전까지만 해도 저녁식사는 뭘 먹지 따위의 생각이나 하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습니다만, 짧은 메세지를 확인하자마자 뭔가로 심장을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2년 전부터 지긋지긋하게 아빠를 따라다녔던 병, 우리 가족을 때로는 서로 지지하게 만들고 가끔은 미워하게도 하던 언젠가부터 공기처럼 우리와 함께 숨쉬어 온 그 병이 마지막으로 고개를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설명이 없었어도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든 것은 오로지 '병원 간다고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주기적으로 점검을 받아 왔고, 재발한 적이 있었으나 괜찮아졌었고, 그래서 처음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진단도 세월이 지나 그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번에 병원에 간다, 그것도 '입원' 이라고 표현하면서 연락을 한 것은 아마 지금이 마지막 입원이 될 거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라고 생각했으나 바로 깨달았어요.

어쩌면 부모님은 긴 시간 동안 자녀들에게 그간의 투병사를 곧이곧대로는 공유하지 않으셨겠노라고. 병을 '관리' 하며 살아가고 계시다는 나의 믿음과는 달리 아마 그냥 나날이 살아남고 계셨던 것이었겠다는 깨달음이,

한 줄짜리 문자에 바로 통화버튼을 누르며 울리는 연결음을 듣는 동안 소나기처럼 닥쳐왔습니다.


통화하는 내내 부모님은 번갈아 전화를 받으며 너무 걱정마, 처음도 아니고, 얼마전에 석촌호수 근처 노랑통닭을 갔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맛있더라, 하며 뜻없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전 부모님 앞에서 울어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 냉담한 자녀인데요. 그 좋은 날 이런 문자를 보내기까지 두 분이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생각하니 그야말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걸 알아챈 두 분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늘은 왜 이렇게나 좋은 봄날인 걸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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