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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5. 2023

떠나는 이야기 #3

마지막 귀가

회사는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업종이었습니다. 무급휴직, 유급휴직이 돌아가며 시행되었고 아빠의 투병 중에 잠시나마 휴직기간이 겹치면서 시간을 좀 더 낼 수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행운이었다고 봐야죠. 근무시간도 근무시간이지만 집에서 회사, 집에서 친정이 각각 1시간씩 떨어져 있었기에 길에 버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그러던 하루 난데없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와 퇴원 수속을 밟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도저히 더 이상 입원해 있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잠시라도 그냥 집에 계시게 하려고 한다'

'병원에서 퇴원을 시켜줘요?'

'환자가 원하면, 그리고...'

'.....'

'그리고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런가 막지도 않더라'


아빠는 철없는 아이처럼 내 집 돌아와서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니 너무 좋다며, 그냥 집에서 죽으련다, 하고 농담을 했습니다. 이런 고통 중에도 농담이 나오는 사람이라니 그간 아버지의 정신력을 과소평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해 보니 예전처럼 소파에 앉아서는 왔냐, 하시는 모습에 순간 희망을 가졌습니다. 혹시 좀 상태가 좋아진 것 아닐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집에서 편히 쉬시면 앞으로 몇 년 더 이렇게 버티시는 거 아닐까?

다시 전처럼 아슬아슬 모르는 척 이놈의 병과 공생하며 좀 더 지낼 수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금세 깨달았습니다. 며칠사이 20킬로는 빠져 버린 몸무게를 증명하듯 노랗게 말라 버린 다리와 대조적으로 부른 배는 이미 회복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낮잠이라도 들 때면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숨소리가 미약했고,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니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해 전신의 순환이 아예 멈춘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바깥 날씨를 보면 누가 손에 쥐고 짜는 듯 심장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저 햇살 아래를 한 번만 더 같이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신을 믿을 수 있을 텐데.


그 와중에 아버지의 간호를 전담하던 엄마는 마른 몸으로 덩치 큰 아버지를 케어하다 보니 허리가 고장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간병인을 알아보았지만 엄마는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생판 남에게 아빠를 몇 시간씩 맡겨둘 수는 없다며 고집을 부렸어요. 비용도 물론 부담이었지만, 평생 자식들에게 무엇 하나 부탁하는 법이 없는 엄마의 단호한 말에 딴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다른 누구에게도 아빠를 맡길 생각이 없어. 내가 끝까지 버틸 테니까 너희는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즉시 오기만 하면 돼'


우리 엄마가 이렇게 강한 사람이었나 하고 새삼 놀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정에서 자겠다고 해도 그래선 안된다며 완강히 돌려보냈고, 입원해 계실 때 병실에서 자겠다고 하는 것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간호하시다 엄마까지 병나겠다고 아무리 말해도 도대체 통하지를 않았어요. 그땐 아니 왜 이러나 싶었던 엄마의 과한 행동이 어째서였는지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오래지 않아 이런 큰일을 겪다가 행여나 신혼부부 사이가 소원해지지 않을까, 괜히 사돈댁에 책이라도 잡히는 건 아닐까, 내 자식이 배우자에게 미안할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을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걱정을 대체 왜 하는가 싶겠죠? 하지만 우리 엄마는 가족 없는 삶, 자식에게 폐 끼치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80년대 어머니입니다. 그런 엄마가 배우자를 잃는 위기를 목전에 두고도 자식 생각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버티려고 했던 인고의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을지 - 고통이든 지루함이든 외로움이든 - 나로서는 영원히 깨닫지 못할 거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갚지 못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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