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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pr 05. 2023

떠나는 이야기 #4

하루씩 안녕

집에 돌아와 기뻐하시던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고, 아빠는 하루하루 약해져 갔습니다. 내심 이러다 정말 집에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엄마가 과연 이 집에서 계속 사실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정신이 멀쩡하셨다가도 느닷없이 의식 없이 죽음 같은 낮잠을 주무시기 일쑤였고, 매일 달라지는 모습에 재입원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집에 들렀고, 가보지 못하는 날이면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내심 신혼집으로 돌아와 있는 시간이 더 고통스럽기도 했습니다. 대체 언제 어떤 연락이 올 지 모르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거든요.

원래 잠귀가 예민하고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하는 저였기에 밤엔 늘 무음으로 해 두고 잠을 청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혹시 중요한 연락을 받지 못할까 봐 알림을 켜 둔 채 자다가 쓸데없는 문자에 깨어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아빠의 오락가락하는 의식 때문에 어쩐지 이미 절반 정도는 아빠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맑은 정신으로 함께 대화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와, 한 달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절망감, 할 말을 하나도 전하지 못한 듯한 고통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집에서 남편과 식사를 하고 그가 식탁을 정리하는 동안 아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후다닥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응, 뭐 하나 싶어서 해봤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직감적으로 정신이 드물게 맑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몸은 괜찮아요? 응, 비슷하지 뭐, 걱정하지 마. 저녁은요? 먹었지 먹었어. 엄마는 옆에 계세요? 그렇지. 아빠 때문에 엄마만 고생이다.

발음이 부정확하지도 난데없는 신세한탄을 하지도 않는, 평소 그대로의 아빠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아빠'

'응'

'아빠'

'응'


얼마 지나면 내가 아빠라고 불러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죠? 두 번 세 번 아빠를 불렀고 그때마다 똑같이 응, 하고 대답해 줬습니다. 아마 다 알고 계셨을 겁니다.  


'아빠 사랑해'


수화기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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