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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마드리드

D-2 인천→마드리드

by 게으른여름

2025.6.29 (Sun) / 37°



두 번째 순례길을 위해 약 15시간의 비행을 견디고 오후 5시 30분경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2년 전 포르투갈 길을 마치고 마드리드에서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길을 떠나려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다. 오래전 배낭여행 때 이 길을 걸으려 했으나 건강문제로 포기해야만 했고 언젠가 가야지 하면서 10년이 넘게 흘렀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은 내게 슬픔과 교훈을 함께 주었다. 인생에 언젠가는 없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떠났던 나의 첫 까미노. 그리고 스트레스에 절여졌던 올해 대책 없는 퇴사 후 떠나온 두 번째 까미노.


어제 새벽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밤새도록 짐을 챙기고 방청소를 하느라 단 한 시간도 잠을 자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도 스페인 도착 후 시차 없이 피곤으로 쓰러져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숨도 자지 않고 영화 6편을 내리 보면서 왔다. 비몽사몽 한 정신이라 여행의 설렘이나 긴장감이 1도 없다. 아니면 세 번째 마드리드라 익숙한 것일까. 공항도 버스도 풍경도 낯익은 모습.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길이 시작하는 생장(Saint-Jean Pied-de-Port)으로 이동하는 여러 방법 중 피로감이 가장 덜 할 것 같은 방법을 택했다. 마드리드에서 1박 후 아침 첫 기차로 팜플로나(Pamplona)로 이동, 팜플로나에서 버스로 환승해 생장에 도착하는 루트다. 몇 년 전이라면 고민도 없이 당연히 공항에서 자정 넘어 출발해 팜플로나에 새벽에 도착하는 야간버스를 탔겠지. 하지만 지금은 더 늙었고 체력이 더 약해졌고 불과 이틀 전까지 출근을 했고 바로 까미노를 시작해야 하기에 되도록 체력을 아껴야 한다.


지난 경험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자잘한 걱정과 욕심들이 붙어서 전보다 2Kg 정도 가방 무게를 늘려버렸다. 시트 세재라던가 비타민, 포도당캔디, 소금캔디, 전자책, 경량패딩 같은 것들이다. 첫날이라 짐이 최대치라 너무 무겁다. 영양제나 로션 등등 쓰다 보면 사라지겠지만 지금은 한 달 치를 모두 짊어져야 한다. 공항만 왔다 갔다 했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도 최대치이지만 왔는데 잘해봐야지 어쩌겠어.


내일 아침 아토차역에서 첫 기차로 떠나야 하기에 역과 가까운 호스텔을 예약했다. 공항에서 아무 곳도 들르지 않고 호스텔로 왔지만, 체크인 후에는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마드리드는 미술관과 쇼핑 외에 떠오르는 매력이 없다. 이렇게 방 안에만 있어도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자에게 매력을 주지 않는 도시라니. 누군가에게 마드리드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호스텔 에어컨이 엄청나서 추울 정도다. 이게 마지막 에어컨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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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1710F2-D974-4812-8EE3-09966E69D824_1_105_c.jpeg 오늘의 침대 <Hostel Siesta &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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