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는 안 와도 된다니!
낯선 번호로 막내이모라며 연락이 왔다.
저장된 번호가 아닌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전국에 흩어진(?) 이모들이 모이고 있는 중이란다.
엄마는 6남매의 맏이인데 엄마가 20년 전에 돌아가시니 자연스럽게 내 자리도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외할머니의 삶을 진두지휘 하는 것은 인근에 사는 막내이모다.
나랑 5살 차이 나는 그녀는 나와 사이가 데면데면하다.
어려서부터 앙숙(?)이었고, 어른이 된 나는 이모와 왕래하지 않았다.
작년에 외할머니랑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다.
통화하면서 알아차렸다. 이 통화가 마지막이겠구나.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연락했고 곧 찾아갈 듯 했지만 외할머니는 아프지 않은 척 하셨다.
그녀의 뜻을 이해하는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선물...
그 말에 울음이 터졌고, 뭔가 내 몸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조실부모한 나에게 외할머니의 존재는 허상 같았다.
마음이 내킨다면 분명 연을 이어갈 수 있었겠지만 엄마로 인해 나는 친가 소속이지 외가에는 마치 낯선 손님 같았다. 불편한 객식구인 느낌이 참 싫었다. 그나마 나를 잘 살펴준 셋째 이모가 있어서 '외가'라는 존재가 인식된 것이지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허상인 외가...
외할머니와는 몇 없는 추억이지만 한결같이 '내 할머니 같지 않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녀의 삶에서 발달장애인 아들이 짙은 그림자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막내이모가 알려온 외할머니의 임종에도 그 외삼촌에 대한 부담과 조치에 대한 염려가 가득했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한단다. 눈치를 봐서인지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건넨 말이 왠지 아프다. 오라고 해도 고민했겠지만, 오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이 나를 위한 배려인지 자신들을 위한 선택인지 헷갈렸다.
서류상 혈육일 뿐 20년 전에 끊어져버린 가족이라는 인연...
외할머니의 죽음이 어쩌면 마지막 남은 내 누더기 옷의 조각이 날아가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죽음 후에도 외가와 왕래가 있었고, 가족이라는 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자주 상상해 봤다.
그들과 왕래를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잔 걱정이 많고,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모였다 하면 염려라는 이유로 뒷담화 하는 이모들의 특성을 잘 알기에 그들과 연이 이어졌다면 나는 어떤 구설수의 주인공이 됐을지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 이모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치 요즘 SNS에서 익명으로 헛소문을 퍼다 나르고 공격하는 '여론조작범'들 같다.
외할머니 죽음 앞에서 혼자서 애도하는 마음이 복잡하다.
하지만 작년에 암진단 소식을 듣고서 이미 준비했던 과정이 있어서인지 내 삶에 닫히지 않던 어떤 문이 드디어 닫히는 느낌이 든다.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