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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용히 나를 돌볼 수 있을 때

by 석은별

거울 앞에 앉아 이마에 생긴 잔주름을 쳐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얼마나 보살피며 살았을까?’

내 몸은 지금도 열심히 나를 살게 하고 있는데,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돌봤을까.


누군가의 기분에는 민감했지만, 정작 내 기분에는 무심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열 번쯤 읽었으면서, 내 마음은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너 지금 괜찮아?’ 그 한 마디를 나 스스로에게 해준 적이 있었던가.


언젠가 지인에게 “당신은 참 단단한 사람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흠, 그냥... 무뎌진 걸 수도 있어요.”

그때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생각할수록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나는 단단해진 게 아니라 다쳐도 표현하지 않는 방법을 배운 거였다.

참고, 미루고, 누르고. 그게 익숙해져서 이제는 상처가 나도 덜 아픈 척을 하게 된 거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천천히, 내 마음을 살피기 시작했다.

예전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이 분주했는데, 요즘은 잠깐이라도 멍하니 하늘을 본다.

해가 들이치는 커튼 사이를 보며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니?” 그렇게 나에게 묻는다.

지나치게 격려하지 않고, 억지로 다독이지도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지금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준다.

“아, 오늘은 좀 우울하구나.”
“조금 서운했지, 그 말.”
“이건 피로에서 온 감정 같아.”

그렇게 이름을 붙이면 신기하게도 감정이 조금은 자리를 잡는다.


예전엔 감정을 다루는 법은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픔은 참고, 분노는 억누르고, 불안은 무시하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감정은 돌봐야 하는 존재라는 걸.

한 아이를 돌보듯, 내 감정도 토닥여줘야 한다는 걸.

요즘의 나는 자주 스스로를 위해 차를 한 잔 내린다.

별일 없는 하루 끝에 나에게 주는 소소한 상이다.

컵에 따뜻한 물을 따르고, 찻잎이 우러나는 걸 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는 시간.

그 시간은 누구도 몰래, 나만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예전엔 돌봄이란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일이었다.

엄마, 고모, 아이, 남편, 내담자, 친구.

그들에게 좋은 말을 건네고, 도움을 주고,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나의 돌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돌봄은 언젠가 나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제는 그 돌봄의 방향을 조금씩 안쪽으로 돌리고 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내가 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작은 감정 하나에도 ‘응’ 하고 반응해주는 것.

그게 나를 살게 한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돌봄도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줄 수 있게 되었다.

강요 아닌 선택, 의무 아닌 다정함.

나로부터 시작된 돌봄은 타인을 위한 돌봄보다 훨씬 오래간다.

어떤 날은 여전히 무너지고, 감정에 휘청거리고,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나를 품에 안는다.

‘괜찮아. 네가 네 편이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숨이 고르게 쉬어지고, 마음에 바람이 스며든다.

‘내가 나를 조용히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해졌다.’

이 문장을 내 마음 어딘가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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